[동아광장/강신욱]인간 바로 봐야 사법 바로 선다

  • 입력 2007년 2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얼마 전에 자신을 해임한 대학 당국을 상대로 법정 투쟁을 벌이던 전직 교수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사건을 담당했던 법관을 향해 석궁을 쏜 사건이 발생했다. 더 충격적인 일은 그 사람이 자신은 피해자이고 사건 담당 법관이 가해자라고 소리치는가 하면, 일부 누리꾼이 이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문명 법치국가라는 이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 이번 사건의 경우 석궁을 쏜 사람의 정신감정이 필요하다는 정도이니 논외로 하더라도 재판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법에 대한 불신이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대부분의 수사나 재판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의 과거 행적을 밝혀내는 일이 요체다. 당사자만 알고 있는 과거 사실의 진실을 제3자인 법관이나 검사가 밝혀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쩌면 신(神)의 영역인지 모르겠다.

사건의 당사자는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 하고, 증인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또 진실을 말한다고 하지만 사람의 기억이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만큼 실체적 진실의 발견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불신의 이유

여기에 사법이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운 숙명적인 내재적 한계가 있다. 법이 지향하는 여러 원칙, 이를테면 인권보장을 위한 적법절차(due process)의 준수라든가 신속한 재판 같은 것도 진실 발견 못지않게 희생되어서는 안 될 가치이다.

이런 변수가 진실 발견 실패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진실이 외면당했다고 생각하는 당사자는 사법을 극도로 불신하게 된다. 문제는 사법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은 사법의 내재적, 제도적 한계보다는 외적 요인에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법의 잣대가 달라진 크고 작은 경험적 사례로 인해 법은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이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됐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은 냉소의 대상이 됐다. 여기에다가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법조비리 사건이 겹치면서 사법에 대한 불신은 깊어지기만 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변호사가 법적 조력을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사건 담당 법관이나 검사에게 청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법관이나 검사, 변호사는 이와 같은 불신이 상당 부분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법에 대한 불신의 가장 큰 책임은 아무래도 사법을 담당하는 사람의 몫일 수밖에 없다. 진실 발견의 어려움을 부단히 고민하고,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부족한 인간이 하기 때문에 범할 수 있는 잘못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법률지식이 풍부하다고 해도 결코 신이 될 수는 없다. 지적인 오만, 독선, 편견은 사법의 가장 무서운 적이다. 형식적인 법 논리에 매몰돼 인간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사법은 권력의 행사가 아니다. 늘 겸손한 마음으로 당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수양이 필요하다.

국민도 대부분의 사법종사자가 자유, 평등, 정의라는 사법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법의 권위를 훼손하는 언동을 자제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법정에서 난동에 가까운 소란을 피우고, 모욕적인 폭언을 퍼붓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이는 민주시민의 모습이 아니다. 사법이 권위를 잃으면 법치주의 근간이 무너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겸손한 법집행-권위존중 필요

사법은 국민의 법 감정과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하지만 여론의 압력이나 물리적인 힘으로 사법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잘못된 수사와 재판에 대한 이성적인 비판은 법률문화 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으나 이해관계에 따라 감정적인 불신을 드러내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사법이 신뢰를 얻고, 권위를 인정받을 날을 기대해 본다.

강신욱 전 대법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