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배극인]서약한다고 청렴 지켜질까?

  • 입력 2007년 2월 13일 03시 00분


12일 오전 10시 경기 정부과천청사 대강당에서는 건설교통부 직원 8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렴실천 결의대회’가 열렸다. 직무와 관련해 절대 금품이나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않고 이를 위반하면 인사나 성과급 불이익을 감수하겠다고 서약하는 행사였다.

‘직무 관련자 접촉 행동기준’도 나왔다. 직무 관련자와 식사나 술자리를 금지하되 부득이 식사를 하게 되면 구내식당을 이용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럴 때도 미리 감찰팀에 통보하도록 의무화했다.

건교부는 국가청렴위원회의 청렴도 평가에서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정부 중앙부처 가운데 바닥권을 헤맸다. ‘혁신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용섭 장관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하다.

그러나 이날 행사를 전해 들은 기업들의 반응은 차가운 편이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직무 관련자와의 접촉을 모두 금지하는 것은 우리까지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이라며 “시장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탁상행정만 요란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더 직설적이었다.

“현 정부 들어 각종 규제가 늘었는데 공무원들이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훨씬 까다롭게 군다. 그렇다고 로비가 안 통하는 것도 아니어서 힘만 더 든다. 업체의 사활이 달린 인허가 업무를 제때 처리해 주지 않으니 방법이 없다. 심하게 말하면 차라리 약간 때가 묻었더라도 공무원이 자기가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해 주면 좋겠다. 그게 전체 국가경제 측면에서도 손실이 적다.”

이 장관의 선의(善意)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러나 청렴은 서약서로 지켜지는 게 아니다. 비리의 온상이 되는 각종 불합리한 규제나 간섭을 철폐하는 게 지름길이다.

국가청렴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정부가 제정 및 개정을 추진한 법령안 232개 가운데 54개가 해당 기관에 과도하게 재량권을 부여하는 등 147건의 부패 유발 요인을 담고 있었다. 가장 많은 법령안을 제출한 곳은 건교부였다.

이 장관은 이날 행사에서 “우리가 편하면 국민이 불편하고, 우리가 불편하면 국민이 편해진다”고 강조했다. 그가 정말로 이런 마음이라면 정책을 통해 국민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결의대회도 자칫 장관의 개인적 홍보를 위한 ‘쇼’에 그칠 수 있다.

배극인 경제부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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