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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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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이 회사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1층 로비에 걸려 있는 120개의 액자였다.
2000년 설립된 후 취득한 특허등록증 120개를 액자에 담아 전시해 놓은 것. 현재 특허 출원이 진행 중인 것도 100개가 넘는다고 했다.
캐봇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이미 특허를 냈거나 특허 신청을 한 200여 개 기술은 대부분 반도체 원판(웨이퍼)을 평탄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액체인 ‘CMP 슬러리’와 관련된 것이다.
이 회사는 CMP 슬러리 시장에서 세계 1위 기업이다. CMP 슬러리 단일 품목만으로 2005년 2억7000만 달러(약 2565억 원) 매출, 3250만 달러(약 300억 원)의 순익을 올렸다.
윌리엄 존슨 재무 담당 부회장은 “정확한 시장 점유율을 알려줄 수 없지만 CMP 슬러리 시장에서 2위 기업과 3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캐봇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CMP 슬러리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이 40%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짧은 역사, 빠른 성장.
캐봇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올해로 창립 7주년을 맞는 신생 기업이다. 원래는 CMP 슬러리를 처음 개발한 IBM에 원료를 공급하던 화학 회사인 캐봇의 사업부였다.
존슨 부회장은 “CMP 슬러리 분야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던 당시 캐봇 경영진이 화학 회사의 사업부로 있는 것보다 별도의 회사로 독립하는 게 성장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캐봇에서 시작한 회사여서 ‘캐봇’이란 이름은 사용하지만 두 회사가 자회사나 모회사의 관계는 아니다. 2000년 9월 캐봇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캐봇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전부 기관투자가들에게 팔았다. 2006년 12월 말 현재 캐봇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최대 주주는 1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씨티은행이다.
CMP 슬러리는 IBM 칩 제조에만 사용됐다. 하지만 CMP 슬러리를 반도체 원판 평탄화 작업에 사용하면 평탄도가 우수해지고 공정 시간이 짧아지는 등의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삼성전자 등 세계 굴지의 반도체 기업들이 캐봇의 고객이 됐다.
윌리엄 클리프 연구 개발 담당 부회장은 “반도체 제품이 작아질수록 CMP 슬러리의 중요성은 커질 것”이라며 “이 분야는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우리 회사의 전망도 밝다”고 말했다.
○특허로 난공불락의 시장을 만들어
캐봇이 CMP 슬러리 시장의 강자로 올라선 비결은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에 있다. 캐봇은 연간 매출액의 15% 정도를 R&D에 쏟아 붓고 있다. 전체 직원 750여 명 중 R&D 인력만 150명이다. 박사가 60명, 석사가 90명이다.
캐봇이 6년 동안 120개의 특허를 취득할 수 있었던 것도 우수한 R&D 인력들이 회사의 지원을 등에 업고 연구에 매달린 결과라고 한다.
캐봇이 보유한 120개의 특허는 CMP 슬러리 시장에서 강력한 방패가 되고 있다. 다른 회사들이 관련 기술을 개발하면 특허권 침해 소송을 내서 타사 제품의 시장 진입을 막는 것.
하이닉스 반도체에서 근무하다 5년 전 이 회사로 옮긴 남철우 박사는 “캐봇은 CMP 슬러리와 관련해 광범위하게 특허를 취득해 놓고 있어서 다른 회사들이 기술을 개발해도 시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맞춤형 제품으로 고객 만족시켜
특허 소송으로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막는다고 해서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제기하자 클리프 부회장은 본사 1층에 있는 ‘클린 룸’으로 안내했다. 투명한 유리창 안에서 방진복을 입은 연구원 3명이 유심히 컴퓨터 단말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제품 테스트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클리프 부회장은 “클린 룸에 들어가는 장비만 5000만 달러(약 475억 원)가 넘고, 반도체 회사의 생산 사이클에 맞추려면 3년마다 장비를 교체해야 한다”며 “하지만 우리가 만든 제품을 실제로 사용하는 고객사와 같은 환경에서 테스트를 하기 위해 클린 룸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마다 원하는 CMP 슬러리의 특징이 모두 다르다”며 “우리는 고객들이 원하는 제품에 가장 근접한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고, 이것이 우리가 시장에서 1위를 지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시카고=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CMP(Chemical Mechanical Polishing) 슬러리::
반도체 원판 평탄화 작업에 필요한 액체. 원판 평탄화 작업을 할 때 슬러리를 사용하면 화학적 연마와 기계적 연마를 동시에 수행하면서 웨이퍼의 평탄도가 높아진다. CMP 슬러리는 나노급 반도체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반도체 평탄화 공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제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美 연방정부 끌어주고, 주정부 밀어주고▼
캐봇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본사 2층 복도에는 흰 가운을 입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사진 액자가 걸려 있다. 지난해 7월 부시 대통령이 이 회사를 방문했을 때 임직원들과 함께 찍은 것이라고 한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미국 각 주(州)를 돌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방문하고 있다.
KOTRA 시카고무역관 정종태 관장은 “부시 대통령의 중소기업 투어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육성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며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전역에 93개의 사무소가 있는 연방정부 기관인 소기업청(SBA·Small Business Administration)은 창업을 도와주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SBA가 지원한 창업 자금 규모는 123억 달러(약 11조6800억 원)에 달한다. SBA는 제품 개발에 대한 자문에서부터 직원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정부의 중소기업 지원도 연방정부에 뒤지지 않는다. 창업은 해당 지역의 고용 증가와 직결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주에서 각종 세제 감면과 기업 설립에 필요한 행정 업무를 원 스톱 서비스로 해결해 주고 있다.
KOTRA 북미지역 본부장인 김주남 이사는 “기업 수로 봤을 때 미국 전체 기업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중소기업”이라며 “미국에 중소기업이 많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잘 돼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KOTRA 뉴욕 무역관에 따르면 2004년 말 현재 미국 기업 738만7244개 중 종업원 수 100명 미만의 소기업은 730만5786개로 전체의 98.9%를 차지한다.
시카고=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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