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심경욱]‘석유전쟁’ 안보전략가가 나서라

  • 입력 2007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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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뭉치를 싸 들고도 석유 가스는 물론 광물을 원하는 만큼 살 수 없는 시대가 왔다. 가채량이 한계를 드러내고 대체 에너지원을 찾지 못한 가운데 석유와 가스는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EU) 일본 간의 패권 경쟁 도구가 됐다. 신흥 자원부국에는 자민족 우선의 국가운영을 떠받치는 지렛대가 됐다.

新전략지역 중앙亞선점해야

러시아와 중국 에너지업체에 대한 외국인 인수합병(M&A) 금지,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의 에너지사업 국유화, 아제르바이잔과 앙골라의 국영업체 특혜정책 등은 단순히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자원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한 단계 더 포괄적인 프리즘으로 봐야 이해되는 국가 안보 차원에 뿌리를 둔 정책이다. 러시아는 미래 전쟁이 자원쟁탈전에서 촉발될 것임을 조만간 공표할 군사독트린에 명기한다는 소식이다.

반도체와 자동차로 벌어들인 돈을 몽땅 털어도 모자라 100억 달러나 더 얹어 자원을 사들이는 세계 4대 원유수입국 한국. 어떤 전략이라야 나날이 치열해지는 지구촌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먼저 점혈(點穴) 전략이다. 뜸 뜰 자리에 먹으로 표시해 놓듯 신(新)전략지역을 설정하고 집중 투자해야 한다. 몽골에서 중앙아시아 스텝 지대, 카스피 해 연안과 캅카스 지방, 흑해, 동유럽의 헝가리로 이어지는 ‘초원의 길’에 위치한 나라는 한국과 문화적 공감대가 넓다. 자원을 보유하거나 송유관 또는 교통망의 요충지로서 지경학적 가치가 높아진 곳을 ‘친구 국가군’으로 만들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둘째, 패키지 전략이다. 지난해 나이지리아의 원유 광구 3개를 제공받는 대가로 1500km에 이르는 철도를 놓아 주기로 했던 포스코건설의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도 이미 패키지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영역에 한정돼선 역부족이다.

자원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띨수록 해당 국가 집권층은 권력 기반을 안정시키고 대외 발언권을 신장하고자 군사력 정비에 애착을 보인다. 이들 나라에 대한 군 간부 양성 경험과 무기 및 장비 제공은 자원협력의 지름길을 열어 주는 행운의 열쇠일 수 있다.

군사협력과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및 정보기술(IT) 협력을 아우르면 뒤처진 자원외교 레이스에서 조금은 만회할 수 있다. 카스피 해역을 방어할 해군을 작년에 창설한 카자흐스탄에 한국 해군은 노후 함정을 제공하고 승조원을 교육했다. 자원 사냥의 먹이 국가가 어디를 가장 아파하는지를 먼저 짚고 겨냥해야 더 큰 열매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선점(先占) 전략이다. 자원외교의 확대만이 능사일 수 없다. 자원부국들에는 ‘선(先)투자’ 외교가 크게 유용하다. 오래전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으로 오지에 도로와 상수도를 건설해 준 일본은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우방으로 우뚝 서 있다. 중국도 아프리카 국가에 차관 보따리를 안겨주고 있다. 한국도 ODA 자금과 간접 투자의 증액을 이제 더 미뤄선 안 된다.

자원민족주의 가속… 전략적 접근을

최근 우리나라도 20여 개국을 대상으로 정상외교를 펼치고 에너지기본법을 제정했으며 국가에너지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런데 국가 안보 차원에서 자원정책을 다루는 국가를 상대하기에 미진한 감이 없지 않다. 지난해 출범한 국가에너지위는 산업자원부가 중심이 돼 외교 통상 전문가가 이끌고 있다. 자원쟁탈을 기저로 하는 분쟁을 예방하고 갈등을 예견하며 한국의 대응을 조율해 나가기 위해선 군사 안보에 익숙한 전략가의 참여가 시급하다.

때마침 쿠르드 지역 유전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민관 자원협력사절단이 파견될 모양이다. 자이툰부대의 파병을 준비하던 시점부터 국방부나 안보전문가와 이라크 유전개발을 함께 논의했다면 이번 사절단은 2, 3년 일찍 쿠르드 땅을 밟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심경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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