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대선불출마 선언]대선판 1차 빅뱅… 계산 바쁜 여야

  • 입력 2007년 1월 1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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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전 국무총리는 여론조사 지지율 3위를 달리는 유력한 대선주자이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포괄하는 통합신당 등 여권발(發) 정계개편의 중요한 축이었다.

이 때문에 16일 그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향후 대선 판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범여권의 ‘대안 후보’로 누가 부상할지, 통합신당 논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나라당에는 어떤 파장을 초래할지 정치권에선 갖가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 범여권 ‘무주공산’

고 전 총리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아우르는 ‘범여권’, 혹은 호남권을 대표하는 후보로 여겨져 왔다. 비록 최근 지지율이 떨어져 3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한나라당 후보를 제외한 후보 중에서는 유일하게 10%대의 지지율을 지켜 왔다.

그런 고 전 총리의 중도 포기로 여권과 민주당은 잠정적인 대선후보도 가시권에 들어오지 않는 무주공산(無主空山) 상황이 됐다.

한나라당 대선주자의 지지율을 모두 합치면 70%에 육박하지만 범여권 진영의 후보들은 지지율이 2∼3% 미만이다. 그럼에도 반(反)한나라당 정서와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세력은 엄존한다. 어떤 형태로든 이를 결집할 대선후보를 만드는 작업은 진행될 수밖에 없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홍보기획위원장은 “호남의 철옹성이 무너졌다”면서 “위기의식을 갖고 어떻게 새로운 후보와 세력을 형성할 수 있을지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누가 대안 후보로 부상할지 가늠하긴 쉽지 않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측에서는 고 전 총리와 지역 기반(전북)이 같아 반사이익이 돌아올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의 선호도 조사에서 정 전 의장은 고 전 총리와 지지층이 상당 부분 겹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 전 총리와 지지기반이 다른 것으로 분석되는 진보 성향의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측은 “지금은 유불리를 따질 계제가 아니다”고 말한다. 통합신당 논의를 주도해 온 김 의장에게는 고 전 총리의 중도 포기가 당의 구심력을 회복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김 의장 측의 기대. 탈당 움직임이 일단 주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내에선 김 의장과 정 전 의장의 ‘백의종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지지율 10%대의 고 전 총리도 ‘국민 여론을 겸허히 수용한다’며 그만뒀는데, 범여권 대통합을 위해 두 분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전 총리의 불출마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에게 눈길이 쏠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여권에서 정 전 총장이 ‘대안 후보’로 지목되기도 했기 때문. 하지만 정 전 총장이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확고한 뜻을 밝히지 않는 데다 아직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약점이다.

이와 함께 한명숙 국무총리, 천정배 김혁규 정세균 의원과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 여권의 잠재 대선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 한나라당 ‘빅3’의 손익계산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은 이탈한 고 전 총리 지지층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쪽으로 가기는 어려워도 이 전 시장에게 올 가능성은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은 호남 지역에서 두 자릿수의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40%대인 지지율이 더 오르면 당내 경선에서 대세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한다.

그러나 ‘득’만 된다고 보지는 않는 듯하다. 자칫 여론의 반발과 다른 대선주자들의 집중 견제를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의 대선구도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전 시장에게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박 전 대표 측도 고 전 시장의 사퇴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대선 판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여론이 새롭게 형성될 수 있다는 기대다. 한 측근 의원은 “이대로 가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지지율 격차가 고착될 수도 있지만 판이 흔들리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래야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은 호남에서 이 전 시장 지지도가 박 전 대표보다 높다는 점에 주목하며 호남의 고 전 총리 지지표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낮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 측은 “현재 상황에서 대선 판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변수들도 불리할 게 없다. 격랑의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 열린우리당-민주당 통합신당 촉진? 지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신당파 의원들은 “중도개혁세력의 소중한 구심점을 잃었다”고 했다. 두 당에 있는 친(親)고건 성향 의원들은 특히 충격이 큰 듯했다.

고 전 총리를 통합신당의 중요 구심점으로 생각했던 열린우리당 내 신당파 의원들의 선도탈당 움직임도 당분간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내 통합신당 논의 자체가 가닥을 잡지 못하고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고 전 총리가 사실상 오래전부터 정치적 흡인력에 한계를 보여 왔기 때문에 생각보다 큰 충격은 없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범여권’, ‘범호남권’ ‘반한나라당 세력’의 전열 정비에 순기능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고 전 총리의 사퇴는 대선에서 모호한 중간지대가 사라지고 대선구도를 선명하게 만들어 준 측면이 있다”며 “고 전 총리로 대표되는 보수-중도가 급속히 약화되면서 ‘반한나라당 세력’의 주류가 중도-개혁으로 재편돼 한나라당과 확실한 날을 세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 고건측 배경 설명 “他후보 지지등 대선관련 정치활동 안해”

16일 고건 전 국무총리의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은 지지자들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이후 고 전 총리 측은 불출마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직접 만든 일문일답을 배포했다. 다음은 문답 요지.

―불출마를 선언한 이유는…. 지지율 하락 때문인가, 아니면 통합신당 추진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인가.

“그동안의 활동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송구스럽다. 기존 정당의 벽이 높아 현실정치의 한계를 느꼈다.”

―언제 불출마 결심을 했나. 2월 14일로 예정된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지켜보지 않고 지금 결심한 이유는….

“출마 여부를 적절한 시기에 알려 드리기로 약속했다. 마음속으로 신년 초에는 알려 드리려고 했다. 정치 일정이 더 진행되기 전에 알려 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제 추대 가능성이 없고 제3후보론이 나오니 불출마를 결심한 것 아닌가.

“여러 번 밝힌 바와 같이 추대 형식을 생각해 본 적 없다. 새로운 대안 정치세력의 통합에 한계를 느꼈다.”

―다른 후보를 지지할 생각인가.

“대선과 관련한 일체의 정치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평범한 국민으로 지내고 싶다.”

―(사실상 대선 조직인) ‘희망연대’와 ‘미래와 경제’는 어떻게 되나.

“희망연대 공동대표 직과 미래와 경제 자문위원 직은 사임할 것이다. (두 단체의) 향후 활동방향은 각 단체의 운영위원회에서 상의할 일이다.”

―(지지 모임인) 우민회 등 자생 조직은….

“자생 단체 회원들의 성원과 봉사에 감사드리고 기대에 못 미친 데 대해 송구스러운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 각 단체의 의사결정기구에서 원만한 협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불출마 결심을 하면서 고민한 사항은….

“성원을 보내 주신 국민과 자원봉사자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송구스러움 때문에 많이 고민했다. 그러나 여론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나라 선거 정치사에 있어서 제3후보나 선거용 정당의 전철을 밝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두문불출하는 동안 중병설이 돌았는데….

“지난 수개월간 호흡기 질환을 치료받았고 현재 완치 단계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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