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바보야, 문제는 核이야!

  • 입력 2007년 1월 5일 19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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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대통령선거는 북한이 핵을 가진 상태에서 치러지는 첫 대선이 될 것 같다. 그때까지 북이 핵을 폐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거 양상도 달라져야 할 텐데 구태의연하다. 핵이라는 실체 앞에서 여야(與野)는 여전히 색깔 공방이나 벌이고 있고, 지식인사회는 관념적이고 진부한 보혁(保革) 담론만 토해 내고 있다. 답답한 일이다.

남북 정상회담만 해도 그렇다. 선거에 별 도움도 안 될 텐데 굳이 하겠다는 정부가 우선 딱하다. 북이 이미 핵을 가졌는데 정상회담이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겠는가. 김정일을 만나서 “핵을 포기하라”고 설득할 생각이라지만 무망한 일이다. 김이 회담에 응하지 않는 진짜 이유 중의 하나가 남쪽에서 핵 문제를 꺼낼까 봐 부담스러워서인데 거기에 대고 설득을 해? 그 정도로 포기할 핵이라면 아예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미국의 세계전략과 대북정책이 9·11테러를 기점으로 바뀌었다면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은 작년 10월 북의 핵실험을 기점으로 변했다.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한다. 북이 핵을 가지지 않았던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때의 논리와 전략은 더는 유용하지 않다. 당시의 ‘성과물’이라는 6·15 공동선언도 ‘잘못 들여놓은 한 발’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땐 동등한 조건에서 대화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북은 핵이 있고 우리는 없는 것이다.

北核앞에서 치르는 첫 대선

그렇다면 대북정책 논의도 ‘핵 이후’로 옮겨 가야 한다. 정상회담이나 햇볕정책도 이제는 핵 이전(以前)의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이 정부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정상회담만 열리면 모든 문제가 풀릴 것처럼 말하지만 상황을 잘못 읽고 있거나, 국민을 호도하기 위해서나, 둘 중 하나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어제도 정상회담이 빠른 시일 안에 열리기를 희망했지만 설령 열린들 무슨 결실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 장관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제기한 ‘북의 빈곤’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장관은 “북의 빈곤에 대해 같은 민족으로서 책임을 감수해야 하며, 빈곤도 북이 핵실험을 한 배경”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핵 이전의 발상’이다.

북의 빈곤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문제다. 북 빈곤의 3대 요인이라는 체제적 모순(폐쇄와 비효율), 정책적 오류(자력갱생의 한계), 자원배분의 왜곡(과도한 국방비)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세계 3위에 해당하는 117만의 병력을 유지하면서, 국내총생산(GDP)의 27%를 국방비로 쓰고 있는 북이다.

그렇더라도 북이 끝까지 핵 보유의 유혹을 이겨 냈더라면 우리도 북의 빈곤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은 그러지 않았다. 이 장관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핵을 가진 북 앞에서 북의 빈곤을 걱정하니, 호사스럽다.

더 심각한 문제는 DJ와 이 정권이 끊임없이 제기하는 ‘핵 이전의 이슈’들이 ‘핵 이후의 이슈’들, 곧 핵과 그것이 우리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가려 버린다는 데 있다. 어디 그뿐인가. 상대를 공격하는 기준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정상회담이나 햇볕정책에 반대하면 ‘전쟁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사안의 본질에 대한 중대한 왜곡이다.

한나라당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번번이 집권세력의 논리에 말려들어 ‘정상회담이 되느니, 안 되느니’와 같은, 핵심을 벗어난 논란으로 끌려 다니고만 있다. 왜, “바보야, 문제는 핵이야!”라고 딱 자르고 나오지 못하는가.

‘포용정책 贊反’ 수준 넘어서야

6자회담이 실패할 경우 북핵을 어떻게 할지, 북을 빼고 5개국이 공동으로 대북 압력을 가할 수는 없는지, 최악의 경우 북핵을 용인하고 살지 등에 대한 분명하고 구체적인 방향과 대책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집권세력이 “그럼 전쟁하자는 것이냐”와 같은 교묘한 말장난으로 논지(論旨)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지식인사회도 마찬가지다. 포용정책에 대한 찬반 수준의 담론에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다. 남북문제와 핵문제를 별개로 보자는 사람도 있지만 군색한 논리다. 누구도 핵을 정면에서 다루지 않는다면 이번 대선은 북핵을 용인하는 대선이 될 수도 있다. 북은 2차 핵실험 준비까지 끝냈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핵 이전의 이슈’에 매달려 아옹다옹할 텐가.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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