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승철]AI는 질병재앙, 국가차원서 대책을

  • 입력 2006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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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시에서 독성과 전파력이 강한 고(高)병원성 H5N1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다. 6000여 마리의 닭이 집단 폐사해 양계장 주위 500m 이내의 닭과 개, 돼지, 염소까지 도살 처분하는 등 방역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3년 전 충북 음성군에서 500만 마리의 닭 폐사와 150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힌 AI가 다시 찾아왔기에 한국이 AI의 안전지대가 아님이 증명됐다.

AI는 조류, 특히 닭의 인플루엔자인데 전 세계가 놀라는 이유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사람의 신형 슈퍼독감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생기는 과민반응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AI 중 H5N1은 독성이 강한 고병원성이고, 조류에게서 사람에게 직접 전파될 수 있다. H5N1은 전 세계 40개국 이상에 퍼져 있고, 100명 이상의 인명 피해를 냈으며, 끊임없는 유전자 변이를 통해 신형 AI 바이러스로의 변형을 시도하고 있다.

아직 사람 사이의 전파력은 없으나 자체 유전자 변이로 H5N1의 독성과 사람 간 전파력을 겸비한 신형 슈퍼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신형 바이러스가 출현하면 AI가 인간의 슈퍼독감으로 바뀌고 인류의 독감 재앙이 시작될 것이다. 그 전까지 조류와 인류의 인플루엔자는 확실히 구별돼 인식돼야 한다.

세계적으로 지난 100년 동안 3차례의 독감 재앙으로 각각 5000만, 100만, 70만 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다. 제1, 2차 세계대전 때의 전사자보다 훨씬 많은 희생자다. 1997년 홍콩에서 H5N1이 처음으로 6명의 사망자를 낸 이후 인류가 계속 공포에 시달리는 이유는 슈퍼독감의 조상이 모두 AI였고, 마침 40년 발생 주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신형 슈퍼독감에 대한 백신이 없어서 발생 지역 인구의 20%가 발병하고, 그중 10%가 중증으로 입원하며, 입원 환자의 3%가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3만 명이 슈퍼독감으로 희생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세계는 테러 공포에 시달리는데 폭탄이나 독가스보다 세균전, 즉 생물 테러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병균은 보이지 않고, 냄새가 없으며, 부피가 작다. 게다가 제조가 쉽고 비용이 적게 들어서, 누가 어디서 뿌린 줄 모른다. 반면 피해가 크고 특히 심리적 공황 상태에 쉽게 빠뜨릴 수 있어 테러 무기로는 최고로 꼽힌다. 생물 테러 무기의 후보 중 하나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다.

지금까지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나 AI에 보건복지부와 농림부가 부처 차원에서 잘 대처해 왔다. 그러나 국가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일을 질병관리본부나 수의과학검역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자연은 대재앙 전에 작지만 확실한 경고를 보낸다. AI는 언제 어디서나 신형 슈퍼독감으로 변할 수 있고, 생물 테러 무기로 쓰일 수 있다. 신종 전염병의 발생 동향은 질병 재난의 전조일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AI 등 신종 전염병을 보건의료 차원이 아닌 질병 재난으로 보고, 국가 안전 보장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의 최고위 보좌관이나 안보팀에 전염병 전문가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방역 당국을 지원하고 전염병 학자를 육성하는 데 소홀했던 탓에 우리의 방역 행정력은 수시로 터지는 질병 재난 위협에 그때그때 대처하는 수준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지진을 막을 순 없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정부는 방역 당국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민간 주도의 전염병퇴치연구사업단을 설치해 전문가를 지원 육성함으로써 전염병 재난 및 생물 테러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박승철 고려대 의대 석좌교수 대한인수공통전염병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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