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미석]이룬 세대, 잃어버린 세대

  • 입력 2006년 10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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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를 일이다. 나이 들면서 왜 남 결혼식에 가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하는지. ‘신랑 신부는 이 자리에 서기까지 키워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라는 ‘뻔한’ 주례사를 듣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거나, 신부 부모님 앞에서 넙죽 큰절 올리는 신랑을 보면서 공연히 울컥해진다. 새색시처럼 단장한 양가의 어머니들이 수줍어하며 입장해 식단 앞에 촛불을 켜는 순간에도, 신랑 신부의 어릴 적부터의 사진을 비쳐 줄 때도….

축복받는 가정을 만들기란 결코 녹록하지 않은 여정임을 알게 된 나이여서 그런가. 생판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부부로 첫발을 딛는 자리는 늘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인터넷에 떠도는 한 주례사를 본 적이 있는데, 부부가 서로 상대의 덕을 보려는 마음만 없어도(혹은 줄여도) 원만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아내와 남편이 각기 30%만 주고 70%는 배우자의 덕을 보려 한다고 치자. 서로 70%를 받으려고 하는데 실제로는 30%밖에 못 받는 셈이니까, 살다 보면 속은 것은 아닌가 하는 혹은 손해 봤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내가 베풀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그런 소모적 갈등은 선순환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아이고 내가 저 사람 좀 도와 줘야지, 건강이 안 좋으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줘야겠다” “생활이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해 줘야겠다” “성격이 저렇게 괄괄하니까 내가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 줘야겠다” 등.

덕 보려는 마음만 없어도 성공적인 결혼생활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인데, 어디 이런 원칙이 부부관계에만 통하겠는가. 가족과 친구 사이, 또 사회생활에서도 나는 적게 주고 일방적으로 상대에게서 더 많이 받아내야겠다는 생각이 숱한 다툼의 원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자기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결혼을 끝장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초보 부부처럼, 대립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 이념 갈등도 그렇다. 20세기 초 통렬한 풍자로 가득 찬 ‘악마의 사전’을 펴낸 미국의 저널리스트 앰브로즈 비어스는 보수주의자를 일컬어 ‘현존하는 폐해를 새로운 폐해로써 대치하기를 바라는 자유(진보)주의자에 반하여, 현존의 폐해에 마음이 사로잡힌 사람들’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한마디로 거기서 거기라는 날카로운 냉소다. 방법의 차이는 있겠으나, 보수든 진보든 궁극적 목표는 세상을, 대한민국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위해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를 정립하기보다, 자신들의 이득이나 기득권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이념으로 포장하는 사람이 많다.

북핵 문제로 복잡하게 얽힌 미국과의 관계도 좀 단순하게 읽어 볼 측면이 있는 듯하다.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도 손해 보기 싫다고 다투는 게 다반사인데 이해관계로 맺어진 국가 간의 관계는 더더욱 한쪽만 이득을 보겠다는 마음으로는 지속되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우리를 둘러싼 여러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은근슬쩍 미국 쪽에만 떠넘기려는 태도는 ‘세계 경제력 12위’라는 국가의 정신연령을 되묻게 만드는 대목으로 비칠 수 있다.

한 세대가 이룬 것은 다음 세대에 가서 얼마든지 잃을 수 있다고 했다. 이대로 가면 과연 우리는 성취한 세대가 될 것인가, 잃어버린 세대가 될 것인가.

고미석 문화부장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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