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규진]폐업 컨설팅과 도박 산업

  • 입력 2006년 9월 5일 19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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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컨설팅회사 P 사장에게서 며칠 전에 들은 얘기다.

“전체 업무에서 폐업 컨설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2년 60%에서 올해 80%로 늘었다. 컨설팅 대상도 자영업자에서 중소기업인과 벤처기업인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른 컨설팅업체도 비슷하다.”

올해 들어 폐업 법률상담이 2003년에 비해 2배로 늘었다는 말도 K 변호사에게서 들었다.

새로운 기업을 탄생시키는 ‘조산(助産) 서비스’보다 기존 기업을 정리하는 ‘장례(葬禮) 서비스’가 각광받는다는 말이다.

장례 서비스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비효율적 공장을 정리하고 효율적 공장을 새로 짓도록 돕는 ‘재창업을 위한 폐업 컨설팅’은 시장경제의 활력소다.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알로이스 슘페터(1883∼1950)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자본주의가 발전한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 늘어나는 컨설팅은 ‘폐업을 위한 폐업 컨설팅’이다.

지난달 31일부터 3일까지 나흘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국제부동산박람회가 열렸다.

4만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미국 부동산에 100만 달러(약 9억5000만 원)를 투자하면 영주권을 주는 투자이민 설명회에 1600여 명이 참여했다. 법률 서비스를 받은 사람만 500여 명이다. 기업인 L 씨는 본보 기자에게 “친구들이 얼른 공장을 처분하고 부동산을 사라고 권유해서 와 봤다. 해외 부동산에 투자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설비투자 증가율은 올해 1분기(1∼3월)에 전(前)분기 대비 0.4% 감소했다. 2분기(4∼6월)도 2.5% 상승에 그쳤다. 공장을 정리한 돈이 투자이민이나 부동산 투기 등 비생산적 분야로 흘러가니 당연한 일이다. 근본 원인은 거미줄 규제에다 노사분규, 경기침체, 반(反)기업정서까지 겹치면서 기업인들이 의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기업 장례식이 늘어난 탓인지 도박까지 성행한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고스톱이 아니라 바다이야기란다.

불과 1년 반 사이에 사행성 성인게임기 ‘바다이야기’가 전국 구석구석에 수만 대가 깔렸다. 도박은 제로섬 게임이어서 당장 일자리와 국부를 줄이지는 않는다. 많은 국민을 알거지로 만들지만 도박장 주인과 부패 정치인, 관료, 깡패들을 부유하게 만든다. 현 정권이 좋아하는 ‘부의 재분배’다. 그러나 도박 역시 장기적으로 생산적 투자 기회를 없애니 성장의 적(敵)이다.

두 서비스업의 성장은 산업구성 변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 신호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콜린 클라크(1905∼1989)는 ‘경제가 발전하면서 산업구성이 1차에서 2차로, 2차에서 3차로 옮겨 간다’는 사실을 실증했다. 경제를 주도하는 산업이 농림어업에서 제조업으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사행성 게임산업과 폐업 컨설팅도 서비스업이다. 두 산업의 번창은 3차산업의 비중을 늘릴 것이다. 산업구성의 변화만 보면 ‘경제는 좋은데 민생이 나쁘다’는 헛소리를 하기 십상이다.

클라크가 경제발전 과정에서 본 모습은 ‘생산적 서비스’의 성장일 것이다. 사행성 게임이나 ‘폐업을 위한 폐업 컨설팅’ 등 파괴적 서비스업이 번창하면 경제는 발전은커녕 정체와 쇠락의 길을 걸을 테니 말이다.

파괴적 서비스업이 성행하는 한국경제를 봤다면 클라크가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임규진 경제부 차장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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