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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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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가깝게 지낸 사람들은 “박영한은 어린애같이 천진했다”고 말한다. 그는 인세를 월급으로 생각할 정도로 현실감각이 없었고, 한 곳에 눅진하게 머물지 못하고 돌아다니기 일쑤였으며, 몸 생각 안 하고 통음과 흡연을 거듭했다. 3년 전 위암 수술을 받았지만 병이 재발했고, 올해 초 동의대 문예창작과 교수직을 휴직하고 몸을 추스르려 애썼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힘들게 투병하면서도 작가는 “문학이 암보다 고통스럽다”고 했다. 창작의 괴로움이 헤아려지는 말이다. 한편으로 그에게 문학이란 알몸으로 겪은 체험을 옮기는 것이었으니, 살아온 날들이 힘겨웠다는 얘기로도 읽힌다. 술 한 잔 들어가면 세상이 온통 ‘손 한번 봐야 할’ 일들로 가득했다는 작가. 그가 몸으로 부대끼면서 울고 웃은 얘기를 옮겨 적은 소설에 독자들도 울고 웃었다. ‘머나먼 쏭바강’ ‘왕룽일가’ ‘우묵배미의 사랑’ 같은 대표작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은 이렇게 ‘인간을 생짜배기 알몸뚱이로 보려는 노력’(‘우묵배미의 사랑’에 실린 작가 후기)이 치열하게 담겨서다.
지난 주말 소설가 윤후명 씨가 병실을 찾았을 때 박영한은 뭔가를 찾는 눈치였다. 술친구 글친구로 수십 년을 벗해 온 윤 씨는 금세 알아채고 담배를 쥐여 줬다. 그는 위를 3분의 2 이상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지만 술 담배를 끊지 못했다. 박영한은 윤 씨에게 “우리 아들이 소설을 쓰겠다는데 잘 좀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문학이 암보다 더 괴롭다면서도 그는 문학의 길을 걷겠다는 아들을 말리는 대신 격려했다. 문학이 주는 고통 너머 희열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김지영 문화부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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