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영]아나운서 함들이 15분 중계한 '연예가 중계'

  • 입력 2006년 8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노현정 씨 집에 함 들어가는 것이 공영방송 뉴스입니까.”

“함 받는다고 15분 방송했으니 결혼할 땐 2시간 특집 방송을 하겠군요.”

KBS 2TV ‘연예가 중계’가 19일 황금 시간대인 오후 8시 55분 아나운서 노현정 씨의 결혼 소식을 방송 첫머리에서 15분간 다뤄 누리꾼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공영 방송이 1시간짜리 방송 프로그램 중 4분의 1을 자사 아나운서의 함 받는 소식에 할애한 것은 채널의 사유화이며 시청자를 우롱하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진행자는 “노현정 아나운서가 오늘 함을 받는다는 행복한 소식을 전해 주겠다”고 했지만 정작 함진아비를 맞는 노 아나운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데는 실패했다. 대신 프로그램의 전반부 10분은 ‘결혼 앞둔 예비 신부 노현정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 아래 이미 뉴스나 오락 프로그램에서 방송됐던 노 아나운서의 모습을 짜깁기해 보여 주었다.

‘긴급 취재, 노현정 함 받는 날’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나머지 5분은 예비 신랑의 짧은 인터뷰, 함진아비들과 예비 신부 후배 아나운서들 간의 의미 없는 실랑이로 채워졌다.

“디저트 먹으면서 프러포즈했다” “(호칭은) 오빠라고 부른다” “예쁘고 착해서 좋았다”는 인터뷰 내용이 전 국민이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연예가 소식인가.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아침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의 결혼 소식을 버젓이 ‘연예가 소식’으로 처리하는 KBS 특유의 ‘공영방송 철학’이었다. 보도와 오락 프로그램 진행자를 가르는 선이 희미해진 것은 오래 전 일이라지만 정색을 하고 뉴스를 진행하다가 “열일곱 살이에요” 하고 춤추며 노래하거나 “팥빵에 팥 들어가는 것 보셨어요?”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노현정 아나운서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불편했다.

KBS는 최근 남성잡지용 화보 촬영을 한 아나운서에 대해 “상업적 정치적 활동을 절대 엄금하는 아나운서 복무규정을 위반했다”며 열을 내고 있다. 하지만 ‘진실’을 전달하는 뉴스 진행자를 ‘재미’를 추구하는 오락 프로그램에 캐스팅하고, 자사 아나운서와 재벌 3세의 결혼 소식을 구구절절 방송하는 것은 상업적 활동이 아니면 무엇인가.

이진영 문화부 eco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