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반병희]김우중이 진 빚, 김우중에게 진 빚

  • 입력 2006년 6월 6일 03시 02분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 재판정에는 굽은 어깨에 초췌한 모습의 노인이 들어섰다. ‘5대양 6대주가 비좁다’며 세계를 휘젓고 다녔던 김우중(69) 전 대우그룹회장이었다. 온 나라가 5·31지방선거와 독일 월드컵에 빠져 있던 터라 이날 재판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았다.

법원은 김 전 회장에게 징역 10년에 추징금 21조4484억 원,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기업윤리를 망각하고 편법 행위로 대우그룹 도산 사태를 부른 데다 막대한 공적자금을 사용한 만큼 엄벌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었다.

정확히 10년 전인 1996년 이맘때 기자는 본보 기획시리즈 ‘마지막 남은 석유자원의 보고, 카스피 해를 가다’를 취재하기 위해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를 찾았다. 때마침 김 전 회장이 바쿠에서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국제 석유메이저들과 카스피 해 석유개발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현지 정부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김 전 회장은 당시 “우리가 살길은 카스피 해를 잡는 것이다. 국력이 아직 안 되니 기업이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나. 비록 실패 확률이 성공보다는 높지만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빵 조각 몇 개로 식사를 때우고 수행원도 없이 돌아다녔다. 하기야 파리를 100차례 이상 방문하고도 루브르박물관 한번 찾은 적이 없다는 그이기에 이런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였다.

카스피 해가 다시 화제다.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이 아제르바이잔을 찾았다. 외교 공관조차 없는 이 나라에서 사흘씩이나 머문 것은 카스피 해 석유개발에 합류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초기 단계이지만 아제르바이잔 정부와 카스피 해 이남 광구 공동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10년 전 대우의 시도가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여기서 한 가지 사실만은 짚고 넘어가고 싶다. 부도덕한 기업인으로, 실패한 기업인으로 판정 난 김 전 회장이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곳곳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점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컨설팅업체를 운영하는 양용호 변호사는 “중앙아시아 국가 상당수와 국민들은 어려웠던 시절 자신들을 찾아준 대우그룹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며 “덕분에 한국의 후발기업들이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1967년 불과 500만 원으로 세운 회사를 재계 서열 2위로 키워낸 그의 성공신화에 한국 사회는 열광했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파미르 고원에 고속도로를 내고, 아프리카 정글을 헤치고 댐을 건설할 때 한국인들은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후 도전과 개척 정신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그가 제창한 ‘세계경영’은 오늘날 각 기업이 내세우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원천 모델이 되고 있다.

김 전 회장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그에 대해 정확히 평가하자는 것이다. 탈법과 불법 경영에 대해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설령 국내에선 통한다고 해도 글로벌 경제에선 이런 기업들은 예외 없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블루오션에 대한 김 전 회장의 도전 정신은 살려야 한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의 실종이야말로 한국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 중 하나이다. 김 전 회장은 우리사회에 큰 빚을 졌다. 그러나 후배기업인들도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반병희 사회부 차장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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