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개년 계획으로 시작된 국민방독면사업에 따라 전국의 민방위대원과 관공서 지하철역 등에 116만4000여 개의 방독면이 지급됐다. 하지만 셋 중 하나가 유사시 오히려 생명을 위협하는 ‘살인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니 끔찍하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되는 도구를 철저한 검사 없이 사들인 정부나, 불량으로 만들어 납품한 업체나 모두 용서하기 어렵다. 당국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다시는 이 같은 불량품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일부 국민방독면의 성능에 대한 의혹은 2002년 9월 한 방독면 제조업체가 처음 제기했다. 2003년과 2004년에는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추궁이 있었다. 2004년엔 경찰이 한 제조업체의 불량 방독면 생산·보급 사실을 적발했다. 이 업체가 성능이 떨어지는 재료를 쓰고, 검사기기를 조작했으며, 관련 공무원과 의원 보좌관에게 금품까지 주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런데도 주무 당국인 행정자치부와 소방방재청은 “검사 결과 성능에 이상이 없다”거나 “최초 생산품 17만 개를 리콜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비켜 갔다. 보급된 방독면이 아니라 생산 회사에 보관 중이던 정상 제품에 대해서만 성능검사를 했으니 이상이 발견될 리 없었다.
41만여 개의 불량 방독면이 국민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데도 행정 당국이 국회까지 속여 가며 거짓말을 한 셈이다. 겉으론 소리 높여 ‘혁신’을 외치지만 뒷전에선 비리(非理) 감추기에 바쁜 참여정부의 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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