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방북 합의’는 이런 생각을 굳혀 준다. 남측이 DJ 방북 의사를 전달하자, 북은 다른 현안은 제쳐 놓은 채 이를 수락했다. 남측 수석대표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큰 성과라도 되는 양 기자들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 문제가 그렇게 급박하고 중요한가.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와 6자회담의 교착 속에 추진되는 DJ 방북은 한반도 정세에 대단히 미묘한 파문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남북은 이에 합의했다.
우리는 민간인인 DJ가 이 시점에 무엇 때문에 방북하려 하며, 정부는 왜 이를 지원하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선 그의 방북을 ‘북측과 연방제 또는 남북연합을 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DJ는 지난해 12월 노벨 평화상 수상 5주년 기념 강연에서 “북핵 해결 등 여건이 성숙되면 남북연합제의 통일체제로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6·15 남북공동선언에 있는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간다’는 대목과 일맥상통한다.
남북은 이번 회담에서도 “6·15공동선언 이후 이룩한 성과들을 평가하고, 남북 관계를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에 맞게 더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DJ 방북에 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구나 DJ 방북은 국민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추진되고 있다. 재임 시절 ‘햇볕정책’과 ‘퍼주기’로 남북관계를 더 꼬이게 만든 그가 현 정부의 대북 특사 역할을 맡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도 무슨 논리로 그의 방북을 북측과 논의하고,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지 밝혀야 한다. 만에 하나 DJ 방북을 통해 북에 ‘선물 보따리’를 줄 생각이라면 국민의 동의를 먼저 구하는 게 순서다.
DJ는 6·15선언의 완성을 꿈꿀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답방을 통해 이뤄지는 게 마땅하다. 6·15선언은 지금으로선 공허한 약속이었을 뿐이다. DJ 방북이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한 남북관계의 정상적인 진행과 한미동맹 강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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