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카페]가구 제국의 오만

  • 입력 2006년 4월 13일 0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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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째 열린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다녀왔습니다. 그들의 창의력에, 장인정신에 놀랐습니다. 디자인 베껴간다며 한국인 입장을 막는 곳도 있었습니다. 최고기술의 자부심과 오만. 오만은 베껴선 안 됩니다. 하지만 그 상상력의 힘은 베껴야 합니다.》

5일부터 10일까지 ‘2006 밀라노 가구박람회’가 열렸던 이탈리아 밀라노 시 외곽 지역에는 ‘리소네’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인구는 불과 3만 명. 여행객도 그냥 지나쳐버릴 만한 소도시죠. 하지만 이곳에는 이탈리아의 저력을 알 수 있는 비밀이 숨어 있답니다.

전 세계의 가구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몰려드는 국립 가구학교가 그것입니다. 현지 가구업체 사장들의 후원을 받기 때문에 등록금도 매우 싸다고 합니다.

정부의 육성 방침에 따라 ‘가구 지역’으로 지정된 이 마을은 주민의 무려 70%가 가구업종에 종사하고 있다더군요.

이탈리아가 가구의 총본산으로 불리는 데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14, 15세기 르네상스가 가장 먼저 시작된 이 나라에는 건축, 조각, 회화 분야에서 많은 예술가가 탄생했죠. 이 가운데는 가구 디자이너들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찬란한 로마제국을 동경하던 유럽 왕실과 귀족들은 저마다 취향에 맞는 화려한 가구를 이들에게 주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가구가 ‘부(富)의 상징’이었거든요.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장인 정신과 다품종 소량 주문 생산의 전통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노천카페의 의자 하나, 길거리에 버려진 변기 뚜껑마저도 예술품으로 생각하는 거장(巨匠)이 많았던 시대 분위기도 한몫 했을 겁니다.

지금도 이탈리아에는 현업 가구 디자이너만 5000여 명인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들은 모두 전문직으로 인정받고 있죠. 어려서부터 조상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디자인 감각을 익혔기 때문에 창의력만큼은 알아줘야 한답니다.

45년째를 맞는 가구박람회는 올해도 어김없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2500여 참가업체 중 이탈리아 회사가 75%나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행사에는 아직도 한국 업체가 제대로 참가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동양인들이 자기 디자인을 베껴 간다면서 사진 촬영은 물론이고 입장 자체를 거부하는 곳도 있더라고요. 오만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래도 그들의 장인 정신과 자부심은 우리가 배울 점이 아닐까요.

밀라노=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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