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영]‘토크 쇼 민주주의’의 함정

  • 입력 2006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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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민주당을 살리고 서울시를 위해서, 당선을 위해 나온 사람입니다. 제가 들러리 혹은 깽판치려고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박주선 전 민주당 의원, 31일 ‘진중권의 SBS 전망대’ 인터뷰).

(이강철 대통령정무특보가 청와대 바로 앞에 횟집을 내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어업인들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인데… 어업인들의 생계에도 보탬이 되는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 지난달 30일 PBC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 인터뷰)

출근시간대 라디오 생방송 시사 프로그램에 정치인을 출연시키는 것이 유행이다. 방송사와 정치인들에게 라디오 생방송 프로그램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매개체’다. 정치인들은 라디오를 통해 큰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현안에 대한 해명이나 소신을 유권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새로운 매체의 출현으로 영향력이 줄고 있는 라디오로서도 정치인들의 입심을 활용해 청취자의 귀를 잡아 두는 것이 싫을 리 없다.

문제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다 보니 거친 표현이나 일방적인 주장이 검증되지 않고 나간다는 점이다. 또 여당 소속 의원들이나 선거 출마 예정자들의 출연 빈도가 높아 정치적인 편향성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에서는 생방송 라디오 프로들이 정파적이고 선정적인 정치인들의 막말을 여과 없이 쏟아내 현실 정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토크 쇼 민주주의(talk-show democracy)’라는 자조적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인 미네소타 퍼블릭 라디오의 생방송 토크쇼 진행자 캐서린 랜퍼 씨는 정확(accuracy)하고 공정(fairness)하며 균형(balance) 잡힌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그건 저널리즘이 아니라 오락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생방송이어서 검증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책임을 피해 갈 수 있는 핑계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스스로를 ‘쇼’가 아니라 ‘라디오 저널리즘’이라고 규정하는 한국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곱씹어 볼 만한 이야기다. 대통령 핵심 측근의 청와대 코앞 횟집 개업 계획을 수산업 진흥 차원에서 평가하는 궤변이나, ‘깽판’이라는 막말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게 언론의 본령은 아니지 않은가.

이진영 문화부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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