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대근]1류 야구, 3류 스포츠외교

  • 입력 2006년 3월 23일 03시 23분


스포츠는 하나의 깃발 아래 많은 사람을 결집하는 마력(魔力)이 있다. ‘브라질은 축구를 통해 국가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도 있다. 스포츠의 사회 통합 기능은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확인됐다. 한국이 4강에 오르자 국민들은 “그나마 야구 때문에 살맛이 난다”고 했다. 한국은 일본에 2승 1패를 거두고도 우승을 내줘 아쉬움도 컸지만 그래도 야구를 보면서 잠시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한국이 야구로 들떠 있던 지난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박용성 IOC 위원의 자격을 일시 정지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이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으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IOC 윤리위원회가 조사를 마치고, 한국 사법 당국이 최종 판결을 내릴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사실은 자진 사퇴 요구나 다름없다. 지난해 김운용 IOC 부위원장도 같은 길을 걸었다. 횡령 혐의로 구속돼 IOC 총회에서 제명될 위기에 놓이자 스스로 위원직에서 물러났다.

두 IOC 위원의 추락으로 한국 스포츠는 당장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달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 직전 IOC 총회가 열렸지만 한국 출신 IOC 위원은 그곳에 없었다. 이건희 위원도 삼성그룹을 둘러싼 복잡한 국내 사정에 발목이 잡혔던 것 같다. 결과는 뻔했다. 2009년 IOC 총회 유치를 신청한 부산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결선 투표에도 오르지 못했다.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선 강원 평창군은 내년에 있을 개최지 선정 투표를 앞두고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을 통해 IOC의 흐름을 귀동냥해야 했다.

한국은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대구), 2014년 아시아경기(인천) 유치전도 벌이고 있다. IOC 총회를 놓친 부산은 2020년 올림픽 유치로 방향을 틀었다.

문제는 이제 스포츠 외교무대에서 ‘한국식 흥정’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할 때는 현대그룹을 앞세워 중동과 아프리카 IOC 위원들을 집중 공략해 일본 나고야를 52 대 27로 제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거래’는 이제 어림없는 일이다. IOC는 2002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뇌물 스캔들 이후 유치 후보도시 측과 IOC 위원들의 개별 접촉을 엄금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여전히 ‘하면 된다’는 식이다. 개최 능력과 실적을 알리는 공식 채널보다 ‘일대일 대면(對面) 승부’에 매달린다. 지난달 IOC 총회에서도 부산시 관계자들이 유럽 IOC 위원들을 방문한 게 문제가 됐다. 역풍(逆風)을 자초한 셈이다.

스포츠 이벤트 유치를 둘러싼 국내 도시들 간의 불협화음도 심각하다. 비슷한 시기의 국제행사를 한국이 다 가져올 수 있는 것처럼 ‘각개약진’하고 있다. 이를 통합 조정해야 할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은 자신이 IOC 위원이 되는 길을 찾느라 분주한 듯하다. 국내에선 ‘여당 출신 실력자’일지 몰라도 국제 스포츠무대에선 아직 낯선 얼굴인데도 말이다. 이러니 IOC 위원들 사이에서 “한국은 국가전략도 없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이 밀어도 안 될 사람은 안 되는 게 IOC 위원이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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