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79>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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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졸들이 피 흘리며 싸우는데 어찌 과인만 피한단 말이냐? 저들과 함께 여기서 싸울 터이니 너희들이나 후군으로 처진 왕릉(王陵)에게 달려가 얼른 이리로 군사를 내라 이르라.”

한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뻗대는데 갑자기 패왕 항우가 내지르는 기합소리가 들렸다. 한왕이 놀라 보니 패왕의 철극에 어디를 맞았는지 병장기를 떨어뜨린 시무가 왼팔을 감싸 안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고 있었다. 홀로 남은 번쾌도 더는 버틸 수 없었던지 오래잖아 큰 칼을 늘어뜨리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놈 번쾌야, 네 어디로 달아나려느냐?”

패왕이 그렇게 외치며 번쾌를 뒤쫓으려다 문득 오추마의 고삐를 당기며 한왕이 있는 쪽을 노려보았다. 시퍼런 불길이 이는 듯한 패왕의 눈길과 부딪히자 억지로 쥐어짠 한왕의 허세도 바닥이 났다. 덜컥 겁이나 말고삐를 당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장 덮쳐오는 패왕의 무시무시한 기세보다 더욱 한왕의 얼을 빼놓는 것은 싸움의 형세가 이미 글러버린 일이었다. 어느새 한군은 장졸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짐승처럼 내몰리고 있었다.

그때 다시 우레 같은 패왕의 외침이 한왕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저기 유방이 있다. 모두 유방을 잡아라. 유방을 목 베거나 사로잡는 자는 만금(萬金)을 내리고 상장군으로 삼겠다!”

한왕은 그런 패왕의 고함을 뒤로하며 말머리를 돌렸다. 유방이 달아나기 시작하자 그길로 승패는 확정되었다. 고릉 북쪽의 벌판은 곧 무자비한 사냥꾼처럼 뒤쫓으며 죽여 대는 초나라 군사들의 함성과 힘없는 짐승처럼 내몰리며 죽어가는 한나라 군사들의 신음으로 뒤덮였다. 뒤쫓는 초군은 고작 3만이요, 쫓기는 한군은 10만이나 된다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어이없고도 처참한 패배였다.

그렇게 한 10리나 쫓겼을까, 싸움터가 된 그 벌판을 겨우 벗어난 한왕이 한 산 밑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이제는 어지간히 추격을 따돌렸다 싶어 한숨 돌리려 하는데, 갑자기 초나라 기마대 수십 기(騎)가 한왕의 앞을 막았다. 한왕을 호위하며 달아나던 낭중 기병 대여섯이 돌아서 그들을 막았으나 워낙 머릿수가 모자랐다. 두세 갑절로 한나라 기마대를 맞고도 남아도는 초나라 기마대 여남은 기가 틈을 타 달아나는 한왕에게 따라 붙었다.

다급해진 한왕이 보검을 뽑아 그들의 창칼을 쳐내며 달아나는데 다시 오금이 저리게 만드는 호령이 들렸다.

“이놈 유방아. 어서 말에서 내려 항복하지 못할까?”

한왕이 움찔하며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오추마가 빨라서인지 어느새 앞을 가로막는 한나라 군사들을 흩어버리고 다시 한왕을 따라잡은 패왕이 저만치서 한왕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기마대를 뿌리치기도 어려워 진땀을 흘리는데, 패왕까지 이르자 한왕은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역시 패현 저잣거리를 떠난 것이 잘못이었던가. 터무니없는 꿈을 꾼 대가를 이렇게 치르는가….’

점점 어지러워지는 손놀림으로 겨우겨우 한 몸을 지키며, 한왕이 속으로 그렇게 탄식했다.

그때 가까운 산기슭에서 한 떼의 인마가 뛰쳐나오며 앞장 선 장수가 소리쳤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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