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경태]‘부산 로드맵’ 선진국 진입 기회로

  • 입력 2005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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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9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1개 회원국 정상이 부산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갖는다. 세계 정치와 경제 흐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역내 21개국의 정상은 매년 한자리에 모여 ‘아태 공동체 건설’이라는 기치 아래 역내 공동의 정책 이슈를 협의하고 조율할 뿐 아니라 정상들은 별도의 개별 회담을 통해 자국의 외교 및 통상 현안을 풀어나가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굳이 우리나라 수출입과 투자의 3분의 2 이상을 APEC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선진 통상국으로의 진입을 목표로 하는 우리는 이번 APEC 정상회의의 논의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과거 우리는 최대한의 수출과 최소한의 수입, 그리고 개발도상국 지위를 활용해 개방의 국내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등 ‘개도국적 발전 패러다임’을 전략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화 추세를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선진국 진입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선진국형 패러다임 창출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개혁과 개방이 상당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의 기간 중 농업을 비롯한 민감 품목을 제외한 상당수의 공산품 분야에 대한 조기 자유화 의지를 천명하여 우리 정부의 개방화 및 시장경제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국제 사회에 전파할 수 있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자유화와 개방화의 폐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이는 우리나라 경제 역량에 대한 과소평가와 APEC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결과다. 실제로 지금까지 개방을 해서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본 사례는 거의 없다. 1980년대 수입자유화 예시 조치에 따라 관세를 인하할 때도 우려가 컸지만 현실적으로 이렇다 할 피해가 없었고 오히려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긍정적 효과를 거두었다. 현재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낮은 국가들도 과감하게 시장을 개방하고 있는 추세이다. 심지어 최빈국인 미얀마 라오스 스리랑카 등도 APEC를 자국 경제성장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가입을 서두르고 있다.

이번 부산 회의는 지난 16년간 전개된 APEC의 활동을 심층 평가하고 경제협력은 물론 안보, 보건, 사회문제와 문화교류 분야에 대한 APEC 차원의 협력 강화 방안을 모색한다. 무역자유화의 목표 달성 방안을 집대성한 ‘부산 로드맵’도 정상들에게 보고될 예정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APEC 회원국의 평균관세율은 1989년 16.9%에서 2004년 5.5%로 하락하는 등 관세, 비관세, 서비스 분야에서 상당한 자유화를 이뤘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장벽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장국인 우리나라가 설득력 있는 로드맵을 제시하고 실천에 모범을 보임으로써 APEC의 정체성 회복과 역동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기대와 바람은 어느 때보다 각별하다.

또 올해 정상회의에는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의 당사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무역자유화의 진전’과 ‘안전하고 투명한 아태지역의 기업환경 조성’ 등 2대 공식 의제 외에 어떤 얘기가 오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또 최고경영자(CEO) 서밋과 투자설명회에는 수많은 기업인, 언론인, 학자가 참가한다. 우리의 경제개혁과 자유화 성과를 알리고 한국이 기업 활동하기에 매력적인 장소라는 것을 홍보하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APEC 같은 큰 국제행사 주최를 장기 비전 마련과 개혁의 계기로 삼아 국가경쟁력 향상에 기여하도록 할 것인지,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분란의 소재로 전락시킬 것인지는 모두 우리 손에 달렸다.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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