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호섭]“야스쿠니 참배 위헌” 日 고법의 용기

  • 입력 2005년 10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9월 30일 일본 오사카고등법원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는 일본 헌법이 규정한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에 위반되는 종교적 활동에 해당하는 위헌 행위라고 판결하였다. 태평양전쟁의 참전군인 유족 가운데 일부 일본인들이 법원에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의해서 발생한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은 최근에 여섯 차례 있었다. 피해보상액으로 요구한 금액은 1인당 우리 돈으로 10만 원 정도이기 때문에 돈보다는 위헌 판결에 의해서 총리가 신사 참배를 공식적으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소송의 본래 목적이다.

오사카법원의 위헌 판결은 2004년 후쿠오카지방법원에 이어 두 번째이며, 고등법원의 판단으로는 처음이다.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이 아니어서, 일본 법원이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위헌이라고 최종적으로 판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 의해서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에 위배되는 행위로서 총리가 해서는 안 될 행위라는 정치적 압박을 더욱 크게 받을 것이다.

판결의 골자를 보면 우선, 야스쿠니신사를 ‘종교단체’라고 단정하여 국립묘지라고 흔히 생각하는 오해를 불식시켰다. 고이즈미 총리는 전쟁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서 참배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흔히 야스쿠니신사를 국립묘지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야스쿠니신사에는 민간인 희생자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 군인 희생자들의 신사이며, 특히 일본 국왕을 위해서 죽었다고 인정되어야 들어갈 자격이 있는 신사이다.

판결에서는 “특정한 종교적 형식으로 참배한 것은 종교적 의미가 깊은 행위이며”, “참배는 총리의 직무에 해당하며”, “국내외의 강력한 비판 속에서 참배를 실행하고 계속하는 것은 국가가 야스쿠니신사를 특별히 지원한다는 인상을 주었다”는 것이 위헌 판단의 이유이다. 또한 판결에서는 “고이즈미 총리는 3번에 걸쳐 참배하였으며, 1년에 한 번 참배하는 의지를 표명하였으며,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실행하고 있듯이 참배 실시의 의도는 매우 굳다”고 하여 총리의 참배를 비판하였다.

오사카고등법원의 판결은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우리로서는 매우 용기 있는 판단이라고 본다.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번 판결에 더욱 경의를 표하고 싶다.

첫째, 판결의 시기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9월 11일 실시된 총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이후,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총리가 어떤 행위를 하여도 용납되는 것이 작금의 일본 국내 정치의 분위기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적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거의 정치적 자살행위와도 같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계속적으로 참배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발언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위헌이라고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법원의 판결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아무리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총리라고 해서 그 정치적 행위가 복고적이며 군국주의적 국가 행위에 동조하는 의미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은연중에 의미하고 있다. 태평양전쟁은 어떤 면에서 일본 우익에는 종교전쟁의 성격이 강하다. 일본 신도(神道)를 지키기 위해서 서양 세력에 대해 성전을 감행한 것이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성전의 희생자들을 참배하는 의미가 있다. 이번 판결은 정치와 종교가 혼합될 우려가 있는 복고적 행위를 적어도 총리가 공식적인 행위로 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판결문은 일본의 외교관계까지 언급하였다.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서 국내외 비판이 상당하다는 것을 판결문에 적시하였다.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나서 위헌이라고 판결하였지만, 소송을 제기한 원래 목적인 총리의 참배를 막으려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총리가 종교적인 행위를 하면서 그것이 일본의 외교관계를 손상시키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헌 판결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헌법을 무시하는 총리는 당장은 인기가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용납되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김호섭 중앙대 교수·국제관계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