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79>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10월 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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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알겠소. 먼저 기마대를 내어 적을 급히 쫓게 하겠소.”

한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고 먼저 1000여 기마대를 내어 형양으로 가는 지름길로 달려가게 했다. 이어 3000의 날랜 보졸이 기마대의 뒤를 받치고, 다시 한왕이 이끄는 본대가 내닫듯 그 뒤를 따랐다.

그때 항양(項襄)은 조구의 당부를 따라 거느리고 있던 3000 군사로 성고성에 있던 사람과 재보를 보호하며 형양성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패왕의 가솔이라 하지만 아녀자가 태반이라 사람이 탄 수레가 여남은 채요, 패왕이 그동안 천하에서 긁어모은 금은과 보화가 다시 수십 수레였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그 수레들을 소중하게 지키며 가야 하니, 마음만 바쁠 뿐 길은 더디기 짝이 없었다.

“빨리 가자. 적이 언제 뒤쫓아 올지 모른다.”

두 시진 가까이 몰아쳐도 채 30리를 가지 못하자 다급해진 항양이 행렬 앞뒤로 말을 달리며 인마를 재촉해 댔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한 사졸이 행렬 뒤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적이 오고 있습니다. 저기 저 자우룩한 먼지는 적 기마가 일으키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항양이 보니 정말로 멀리 북쪽 하늘로 부옇게 먼지가 일고 있었다. 그와 함께 적지 않은 기마대의 말발굽소리와 은은한 함성도 들려오는 듯했다. 한왕이 기마대를 내어 급하게 추격하기 시작한 것임에 분명했다.

“놀라지 말라. 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기마 몇 기를 보내 우리를 겁주려는 수작이다.”

항양이 그렇게 군사들을 진정시키며 젊은 부장 하나를 불러 명했다.

“너는 군사 1000명을 이끌고 이 길모퉁이에 매복하고 있다가 적이 오면 들이쳐 그 기세를 꺾어놓아라.”

그 부장이 군사 1000명과 남아 길모퉁이에 매복하자 놀란 수런거림이 가라앉았다. 이어 항양은 추격에 대비해 행렬을 다시 배치시켰다.

“패왕께서 아끼는 사람들이 탄 수레를 맨 앞으로 세우고 재물을 실은 수레를 그 뒤로 하라. 군량과 마초가 그 다음이고 마지막은 군사들이 따르며 뒤를 끊는다.”

그리고 날랜 말을 모는 군사 하나를 형양으로 달려가게 했다.

“너는 종리매 장군에게 가서 알려라. 패왕께서 대사마 조구에게 맡기신 사람과 재보가 모두 한군에게 쫓기고 있으니 어서 날랜 군사를 내어 맞아들여 달라고.”

그리고 한층 급하게 인마를 몰아댔다. 한군의 추격이 가까워서인지 성고성에서 빠져나온 행렬의 움직임이 한결 빨라졌다. 하지만 그리 멀리 달아날 수는 없었다. 복병으로 남겨진 초나라 군사들과 뒤쫓는 한나라 기마대가 부딪는 함성이 아련히 들으며 달린 지 한 식경도 안 돼 다시 한나라 기마대가 따라붙었다.

항양이 행렬 맨 끝에 붙어 따라오던 군사들에게로 말을 말려가 소리쳤다.

“500명은 나를 따라 수레를 지키고 나머지는 여기 남아 뒤를 끊어라. 곧 형양성에서 구원이 올 것이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수레를 형양성으로 몰았다. 아직도 남은 길은 20리나 되었다. 쫓기는 군사들에게는 멀다 못해 아득하게 느껴지는 길이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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