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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9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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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관계자는 종부세가 부과되는 기준시가 6억 원 이상 주택은 1.7%라는 통계를 제시하며 ‘투기와 무관한 서민층’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음을 강조했다. 가구별로 합산해도 6억 원 이상 주택 소유 가구는 18만 내외로 전체의 ‘2%’ 미만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투기 여부와는 관계없이 국민의 ‘2%’를 뚝 잘라서 타깃으로 삼은 정책이다.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금융자산의 비율이 낮아 평생 모은 재산이 집 한 채뿐인 사람이 많다. 필자가 아는 강남의 40평형대 아파트 거주자 L 씨는 퇴직을 앞두고 있다. 그는 “평생 투기라곤 해 본 적이 없다. 이 집에서 여생을 마치려고 했는데 종부세가 매달 100만 원 넘게 나오면 이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에 과도한 거품을 조장하는 투기를 잡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투기 억제라는 공익(公益)이 정당성을 확보했더라도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보유세를 올려 한 집에 10년, 20년 살던 사람을 이사하게 하는 것은 ‘세금 만능주의’이고 ‘세금 고문(拷問)’이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은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보유세가 2∼3% 가도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박 회장처럼 종부세 1%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국민의 ‘2%’가 아니라 0.01%에 속하는 사람이다.
정부는 보유세 실효세율을 현재의 0.15%에서 1%로 올려야 하는 근거를 미국에서 빌려 왔다. 미국은 보유세 비중이 높은 나라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0.5%를 밑도는 곳도 많다. 미국의 주택가격은 연평균 소득의 3.7배이고 한국은 8.9배다. 국토가 좁고 수도권이 과밀해 우리의 주택에는 경제 규모에 비해 거품이 많이 끼어 있다.
정책은 목적의 정당성 못지않게 수단과 방법의 적절성도 갖춰야 한다. 자기도취적 정의감이 앞서다 보면 국가정책에 따른 개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에 소홀하기 쉽다.
모든 분야에서 상위 ‘2%’는 정부의 공격 목표가 된 것 같다.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전체 9등급 중 1등급이 상위 4%로 정해졌다. 소위 SKY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정원을 합하면 1만 명 정도로 전체 4년제 대학 정원의 2.8%가량 된다. 교육혁신위 의견대로 수능을 5등급으로 했다면 SKY는 사라지고 대학 평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교육부가 논술고사에 영어 제시문을 넣지 말라거나, 수리논술에선 풀이 과정을 따지지 말라고 미주알고주알 간섭하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코미디다. 좋은 대학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억누를 과제인가. 국제화시대에 영어를 빼라는 주문은 코미디도 아니다.
일류대 편들자는 게 아니다. ‘2%’를 빼고도 나라를 먹여살릴 창발성(創發性)이 충분히 넘쳐나겠는가. 21세기는 천재 한 명이 수십만 명을 먹여살리는 시대다. 서울에 온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를 창출하는 원동력은 교육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경제정책이건 대학입시이건, 2%를 끌어내려 98%의 속을 풀어 주려는 하향 평준화 게임으로는 미래가 없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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