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60년 할머니 화가 로버트슨 출생

  • 입력 2005년 9월 7일 03시 04분


코멘트
1년에 평균 73점의 그림을 그린 화가. 뭐, 열심히는 했지만 놀랄 정도는 아니다 싶으신가.

하지만 그 화가가 78세 때 처음 붓을 잡고 100세 때까지 그림을 그린 할머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랜드마 모세’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미국 화가 애너 메리 로버트슨. 미국의 대표적인 민속화가 중 한 명인 그가 남들은 인생을 정리할 시점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우리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1860년 9월 7일 태어난 그는 27세에 농부인 토머스 새먼 모세와 결혼한 뒤 생애 대부분을 뉴욕 주 북부에서 시골 아낙네이자 다섯 아이의 엄마로 살았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 홀로 남게 된 78세 때.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그녀의 붓은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있던 기억이었다.

겨울날 썰매 타기, 추수감사절 잔치 등 시골 마을의 단순한 일상에 대한 애정, 땅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질박하고 정직한 삶이 그림으로 풀려 나왔다.

기회는 늘 우연에 실려 온다. 재미 삼아 동네 약국에 전시해 뒀으나 아무도 사 가지 않아 먼지만 쌓이던 그의 그림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38년 어느 봄날, 미술품 수집가인 루이스 캘도어가 그 시골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시선을 잡아끈 약국의 그림 4점이 미술 공부를 한 적이 없는 할머니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캘도어는 이듬해 그의 작품을 뉴욕 미술 무대에 데뷔시켰다. 미국 시골의 일상을 정교하게 표현한 그림과 지긋한 나이, 소박한 인격이 어우러져 그는 순식간에 스타가 됐고 ‘그랜드마 모세’라는 별명을 부여받았다.

세월도 모세 할머니의 열정을 길들일 수 없었다. 오른손의 관절염이 점점 심해지자 그는 왼손으로 그림을 그렸다. 요양원에서 한번은 의사의 청진기를 훔친 뒤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지 않으면 청진기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세상을 뜨기 1년 전인 100세 때까지 그림을 그리며 나이의 장벽을 가뿐하게 뛰어넘은 모세 할머니. 그가 남긴 말은 그 자신의 삶에 그대로 유효하다.

“삶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