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DJ-盧갈등이 도청 실체 덮을 수는 없다

  • 입력 2005년 8월 12일 03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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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때의 국가정보원 도청 문제가 본질에서 비켜나 DJ와 노무현 대통령 측 사이의 정쟁(政爭) 양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힘겨루기에서 노 대통령 측은 일단 열세를 자인하고 있다. ‘DJ 정부 때까지 도청을 계속했다’는 국정원의 5일 발표에 반발해 온 DJ가 10일 입원함에 따라 ‘호남 민심’의 이반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어제 김우식 비서실장을 진사(陳謝)사절로 보내 국정원 발표에 정치적 의도가 없음을 해명하기까지 했다.

국정원의 고백(告白)에 대해 DJ는 “과거 미림팀 도청은 흐지부지되고 국민의 정부에서 하지도 않은 일을 뒤집어씌운다. 본말이 뒤집혔다”고 측근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DJ가 집권 이후 여러 차례 ‘도청 근절’을 지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안의 본질은 DJ 정부 국정원의 도청 여부다. 지금까지의 증언과 자료를 종합해보면 답은 ‘있었다’는 것이다. 과학보안국(8국) 직원들이 휴대전화 도청장비를 차에 싣고 여의도와 서울 시내를 돌며 정당 언론사 등 주요 기관을 도청한 것은 물론이고 청와대까지 도청했다는 증언이 나와 있는 실정이다. 당시 국정원 고위 간부가 자신도 도청당할까 봐 도청이 안 되는 곳을 골라 개인 약속장소를 잡았던 일도 있다.

그런데도 실체 규명은 제쳐놓은 채 전·현직 대통령 측이 정치게임을 하는 것은 본말이 뒤바뀐 일이다. 특히 DJ는 모욕감을 토로하기에 앞서 도청 문제에 책임지겠다는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설사 DJ 정부 때의 도청이 김영삼 정부 때보다 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것으로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다.

‘호남 민심’을 의식해 애면글면 DJ에게 매달리는 노 대통령 측의 모습도 볼썽사납다. 노 대통령은 국정원 발표에 대해 ‘음모론’이 제기되자 “터져 나와 버린 진실을 덮어버릴 수도 없고, 비켜갈 수도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DJ와 노 대통령, 어느 쪽이든 정치적 계산이나 야합으로 진실을 덮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호남 민심’을 모욕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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