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들의 의정 1년 비망록]<6·끝>한나라 이혜훈 의원

  • 입력 2005년 4월 22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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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제 기자
김경제 기자
“나가서 소리 질러!” “군기가 빠졌네….”

지난해 11월 국회 본회의장. 사회를 보던 김덕규(金德圭) 국회부의장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비판하던 한나라당 최구식(崔球植) 의원의 마이크를 꺼버리자 의원석에 앉아 있던 같은 당 이혜훈(李惠薰) 의원의 귀에 이런 소리가 들렸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 원내부대표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 단상 앞으로 달려 나갔다. 김 부의장에게 “마이크를 다시 켜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 모습은 ‘국회의원들 구태 여전’, ‘여성의원들 몸싸움 동원’ 등의 제목과 함께 일부 신문에 크게 실렸다.

그 일을 벌인 직후 이 의원은 본 회의장 밖 한 모퉁이에서 ‘참, 비참하다. 남들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나 역시…’라는 생각을 되씹었다.

“나도 나가기 싫었어요. 그런데 나이 드신 선배 의원들이 뒤에서 고함을 치니까 가만히 못 있겠더라고요. 원내부대표로서 스트레스가 컸어요.”

이 의원은 “17대 국회가 시작된 이후의 1년은 과거 내가 비난했던 정치인들의 행태가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확인한 한 해였다”고 털어놨다.

방송 카메라를 의식해 말하고 행동한 것이 대표적이라는 것. 대정부질문을 할 때는 일부러 암팡진 말투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냈다.

“머리 허연 장관들을 앞에 놓고 빽빽 소리 지르고, 신경을 긁어대는 질의를 하면서 속으로 미안한 적도 많았어요.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 때는 현 경제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정부가 경제를 송두리째 무너뜨린다’고 질책했죠.”

그는 정책 분야의 의정활동도 기대에 못 미쳤다고 아쉬워했다. 이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재정 분야의 비례대표 후보로 거론됐던 이 분야 전문가. 그러나 지역구로 당선되고 난 뒤에는 지역의 조기축구대회나 녹색어머니회 등을 쫓아다니느라 정책에는 신경을 많이 못 썼다는 것.

“주말마다 지역행사를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요. 지역주민들의 민원도 많이 들어오는데, 다음 선거를 생각하면 모른 척 할 수 없더군요.”

이 의원은 최근 1년간 해외출장을 4번 다녀왔다는 이유로 일부 동료의원들에게 “여기저기 다 낀다”는 뒷말을 듣기도 했다. 모 의원은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까지 찾아가 “왜 이 의원만 나랏돈으로 해외출장을 자주 가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하도 욕을 먹어 노이로제에 걸릴까 겁이 나기도 했다”며 “국제기구에서 나를 지명해 초청해 오는 바람에 의원외교 차원에서 외국에 자주 나갔지만 국회 출석률이 낮아진 것은 문제였다”고 실토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이혜훈 의원은▼

한나라당 초선 의원(41·서울 서초갑).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영국 레스터대 교수 등을 거쳐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특보로 영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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