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10>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3월 20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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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오성(Y城) 안에 있는 조(趙)나라 군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나, 하열이 그들과 합쳐 성을 의지하고 맞서 오면 우리 1만 군사로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하열이 오성에 들어가기 전에 잡아야지요. 하열은 반드시 오성 동쪽으로 오게 될 것인데, 마침 그곳에는 군사를 숨길 만한 작은 숲이 있습니다. 그곳에 군사를 숨기고 기다리다가 하열이 오면 단숨에 쳐부수어야 합니다. 하열의 군사들이 한번 무너지고 나면, 오성 안의 군사들은 감히 구원을 나올 마음을 먹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장이가 그렇게 조참을 안심시켰다. 조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장졸을 재촉해 오성으로 달려갔다. 두어 시진을 달려 동트기 전의 캄캄한 어둠 속에 조참이 이끈 1만 한군은 오성 동쪽에 이르렀다. 조참은 장졸들을 단속하여 소리 소문 없이 장이가 일러준 작은 숲에 매복했다.

가을도 끝나가는 9월 하순의 밤은 제법 길었다. 다시 한참을 기다려 날이 희끄무레 밝아올 무렵 갑자기 동쪽에서 말발굽소리와 함께 적지 않은 인마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조참과 장이가 그새 졸고 있는 장졸들을 깨워 싸울 채비를 시키고 있는데, 멀리 하열이 이끄는 대나라 군사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쳐라! 오성 쪽으로는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그 같은 조참의 외침과 더불어 매복해 있던 한군이 벼락처럼 하열의 군사들을 덮쳤다. 밤새 달려와 지친데다 갑작스레 당한 공격이라 대병(代兵)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기세가 오른 한군이 그런 대병들을 한층 매섭게 몰아붙였다.

“너희 옛 주인인 상산왕 장이가 왔다. 조나라 군사들은 모두 옛 주인에게로 돌아오라!”

“하열은 어디 있느냐? 어서 항복해 죄를 빌어라.”

그런 함성과 함께 한군이 사방에서 들이치자 대나라 군사는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저희편이 있는 오성이 나오리란 기대로 힘을 다해 맞서던 하열도 곧 일이 글렀음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군사들을 수습해 물러나려 해보았으나 그것도 되지 않자 홀로 말 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열이 제정신을 되찾은 것은 새벽길을 한 식경이나 달린 뒤였다. 뒤쫓는 적병들의 함성이 잦아들고 말발굽소리도 멀어져 돌아보니 제 편은 보기(步騎) 합쳐 여남은 명이 넋 빠진 얼굴로 뒤따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냐?”

하열이 연방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부근 지리를 잘 아는 군사 하나가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연여(閼與)로 가는 관도에서 멀지 않습니다.”

“연여? 연여라-좋다 그리로 가자. 거기서도 당성(當城)으로 빠지는 길은 있을 것이다.”

하열이 텅 빈 듯한 머리를 쥐어짜며 그렇게 받았다. 그런데 연여로 가다보니 어떻게 알았는지 흩어진 패군(敗軍)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연여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는 다시 천여 명의 대병이 하열을 뒤따랐다. 조금 기운을 되찾은 하열이 멀리보이는 연여 읍성(邑城)을 바라보며 호기를 부렸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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