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37년 로마황제 티베리우스 사망

  • 입력 2005년 3월 15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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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기원전 14년∼기원후 37년). 살아 있을 때는 혹평을 받았으나 죽어서는 ‘가장 훌륭한 황제 중 한 명’(19세기 독일 역사가 크리스티안 몸젠·노벨 문학상 수상자)으로 칭송받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제국을 두 번째로 물려받은 그의 출발은 미약했으나 결과는 창대했다.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능력 위주 인사와 흑자 재정으로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다.

흥미로운 것은 20년 통치기간 중 마지막 10년을 카프리 섬 별장에 틀어박히는 은둔의 정치를 폈다는 것. 그는 모든 것을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반대파들을 잔인하게 처형했고 긴축재정을 단행하는 바람에 민중에게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는 정치인들의 무능력함을 드러내놓고 무시해 원로원의 원성을 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도 그의 시대였다.

마침내 37년 3월 16일 77세의 나이로 그가 죽자 시민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을 정도라고 한다.

지도자가 섬에 은둔해서도 통치가 가능했을 정도로 로마가 이미 사회간접자본이 정비된 나라였다 하더라도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월등한 조건의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통치자가 인기를 무시하고 정치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인기 좋은 통치자가 역사에 반드시 선(善)은 아니라는 사실이 티베리우스가 역사에 던지는 교훈이다.

“후세는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국익을 위해서라면 나쁜 평가에도 굴하지 않고 해낸 것도 평가해줄까. (사람들이 나를) 평가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에게는 신전(神殿)이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중)

원로원이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티베리우스에게 “황제를 위한 신전을 짓고 싶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하며 거절한다. 원로원 의원들은 내심 ‘주제도 모르고 까분다’고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역사가 타키투스는 이렇게 논평했다.

“최고 권력자쯤 되면 이미 많은 특전을 누리고 있지만, 한 가지만은 죽을 때까지 계속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좋은 추억을 남기는 일이다. 명성을 경멸하는 자는 덕(비르투스)을 경멸하는 자가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 노릇하기는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경지일 것이다. 더구나 2000여 년 전의 지도자를 지금과 곧바로 비교한다는 것도 무리다.

그러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평가를 통치의 우선에 두었던 티베리우스 같은 지도자와 시대가 가끔은 그립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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