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03>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3월 11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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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왕, 아무래도 위표에게 너무 너그러우신 듯합니다. 대왕을 배신하고 적에게 항복하여 맞서기까지 하다가 싸움에 지고 사로잡혀온 자에게 막빈의 대우를 해주신다면, 앞으로 누가 대왕을 배신하고 맞서기를 망설이겠습니까?”

위표가 나간 뒤 마침 곁에 있던 주가(周苛)가 불만스러운 듯 한왕에게 물었다. 한왕이 빙긋 웃으며 받았다.

“이번에 팽성에서 크게 지고 온 뒤로 과인을 배신한 제후와 왕이 한둘이더냐? 과인이 위표를 죽이면 앞으로 어느 누가 다시 우리에게 항복해오겠느냐?”

그런데 며칠 뒤였다. 갑자기 평양(平陽)에서 유성마(流星馬)가 달려와 대장군 한신이 보낸 글을 바쳐왔다.

<한 좌승상(좌승상)겸 대장군 한신은 멀리 평양에서 엎드려 아룁니다. 일전에는 대왕의 두터운 믿음과 정을 저버리고 항왕(항왕)에게로 돌아간 위표를 사로잡아 보내었고, 이제는 위나라를 온전히 평정하여 그 땅을 하동(하동) 태원(태원) 상당(상당) 세 군(군)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로써 우리 군사가 처음 하양(하양)에서 하수를 건널 때 얻고자 한 바는 다 얻은 셈이 되나, 엎드려 생각건대 아직 신이 군사를 물려 돌아갈 때는 아닌 듯합니다.

성안군(성안군) 진여는 하열(하열)을 상국으로 삼아 대(대)땅을 다스리게 하고, 자신은 늙고 힘없는 헐(헐)을 허수아비 왕으로 세워 조(조)나라를 주무르면서, 대왕께 앙갚음할 틈만 노리고 있습니다. 이는 패왕이 거느린 어떤 맹장(맹장)과 강병(강병)보다 위태로운 세력이니, 그를 등 뒤에 두고 사나운 항왕(항왕)과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 또 연왕(연왕) 장도(장도)는 항왕이 세웠을 뿐더러 요동왕(요동왕) 한광(한광)을 죽여 그 땅까지 아우른 자입니다. 언제 항왕의 손톱과 이빨이 되어 등 뒤에서 대왕을 물어뜯고 할퀼지 모릅니다.

이에 신은 먼저 북으로 대나라와 조나라, 연(연)나라를 치고 다시 동으로 나가 제나라까지 평정하고자 하오니 대왕께서는 정병 3만만 더 보내주옵소서. 반드시 많은 날을 허비하지 않고 대왕의 동북을 평안케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남으로 군사를 돌려 초나라의 양도(양도)를 끊는다면 항왕이 어찌 서쪽으로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두 번 돌아보고 세 번 헤아리어 올리는 글이오니, 대왕께서는 신의 충정을 부디 물리치지 마옵소서.>

그와 같은 글을 받은 한왕 유방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한왕도 속으로는 진작부터 동북 세 나라의 일을 한신과 같이 보고 있었다. 하지만 패왕 항우가 언제 형양을 들이닥칠지 모르는 판이라 선뜻 한신의 뜻대로 해줄 수가 없었다. 3만이나 되는 정병을 빼냈다가 적의 대군을 맞게 되면 그보다 더한 낭패도 없을 터였다. 그 바람에 얼른 마음을 정하지 못해 장량과 진평을 불렀다.

“자방 선생은 어찌했으면 좋겠소?”

한왕은 두 사람에게 한신의 글을 내주고 다 읽기를 기다려 물었다. 진평이 두 번 살펴볼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대장군 한신의 뜻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군사 3만에 조나라를 잘 아는 장수를 얹어 보내 오래 날짜를 끌지 않고 동북을 평정하게 하십시오.”

“그 사이 패왕이 대군을 몰고 들이닥치면 어찌 하겠소?”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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