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63>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1월 20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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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좋다. 경의 뜻이 정히 그러하다면 구강(九江)으로 가서 경포(경布)를 달래보도록 하라.”

수하(隨何)가 그저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마침내 알아들은 한왕 유방이 그렇게 말하고는 덧붙여 물었다.

“그런데 경의 사행(使行)길에 과인이 특히 뒷받침해줄 일은 없겠는가?”

그 말에 수하가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듯이나 또박 또박 대답했다.

“먼저 관원 스무 명을 저에게 딸려[이십인구] 대왕과 우리 대한(大漢)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여 주십시오. 복색과 기치를 정연히 하고 폐백도 제대로 갖춰주셔야 합니다.”

사신에 딸린 관원이 스물이라면 다시 그들을 따르며 호위와 물자 운송을 맡을 이졸(吏卒)이 또 그 몇 배는 있어야 했다. 그들이 사자의 위엄을 드러내는 기치와 화려한 복색으로 찾아가면 도둑 떼의 우두머리에서 몸을 일으켜 왕이 된 경포에게는 달리 보일 수도 있었다. 한왕이 그 생각으로 빙그레 웃으며 받았다.

“알겠다. 키 크고 잘 생긴 관원 스물과 날랜 보기(步騎) 백 명을 딸려 주겠다. 또 진평에게 일러둘 터이니 그들이 앞세울 기치와 걸칠 복색은 경이 직접 고르라. 그밖에 과인이 더 해줄 일은 없는가?”

“구강(九江)으로 떠날 날은 신이 결정하게 해주십시오. 신이 언제 구강왕 경포를 만나게 되는가가 일의 성패를 가름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말도 한왕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인도 당장에는 경이 경포를 만나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짐작은 간다. 그러나 너무 늦지는 않도록 하라.”

그렇게 말하면서 역시 수하의 뜻을 따라주었다.

뜻대로 될지 아니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래도 수하가 나서서 가슴을 짓누르던 걱정거리를 맡고 나서니 한왕의 마음은 한결 밝아졌다. 아침도 거르고 잠자리에 들어 간밤 내 말위에서 지낸 피로를 씻었다. 그런데 한왕이 한낮이 되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다시 반가운 소식이 들어왔다.

“선보(單父)까지 쫓겨 갔던 관영과 조참이 간밤 수수를 건너 서쪽으로 가다가 대왕이 이곳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이리로 오고 있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두 장군이 수습한 우리 군사도 그럭저럭 1만은 넘어선다고 합니다.”

진평으로부터 그와 같은 말을 들은 한왕은 펄쩍 뛰듯 기뻐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어떤 관영이고 어떤 조참이냐? 5년 전 과인과 함께 고향 패현을 떠난 이래 창칼의 수풀을 헤치고 화살 비를 맞으면서도 끄덕 없이 견뎌낸 이들이었다. 비록 예기가 꺾여 일시 적에게 쫓기게는 되었으나 반드시 살아서 과인을 찾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먼저 우현의 진채에 이른 것은 한왕(韓王) 신(信)의 패군 천여 명이었다. 여지없이 무너져 쫓기면서도 자신을 저버리지 않고 거기까지 찾아와 준 것이 고마워 한왕 유방은 신의 손을 잡고 눈물까지 글썽였다.

이어 관영과 조참이 이끈 일만 군사가 우현에 이르렀다. 죽을 구덩이를 빠져나온 안도였을까, 한왕은 그들을 잡고 다시 한번 목메어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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