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민혁]임종인-정청래의원 ‘허무개그’

  • 입력 2004년 12월 8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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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변칙 상정한 다음 날인 7일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들의 얼굴에는 ‘드디어 해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고, 곳곳에서 웃음도 터져 나왔다.

먼저 임종인(林鍾仁) 의원이 “어젯밤에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이 ‘어, 천정배, 어제 잘했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를 치켜세웠다. 정청래(鄭淸來) 의원은 임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백범 김구(白凡 金九) 선생이 ‘임종인, 잘했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화답했다.

이 대화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나온 농담 수준의 얘기가 아니다. 집권 여당의 의원총회에서 나온 국회의원들의 ‘자화자찬(自畵自讚)’이다. ‘의식 있는’ 운동권, 재야 출신 의원의 입에서 나온 얘기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들 의원의 발언에선 전체 국민은 아예 눈 밖에 있었던 것만 같았다. 국보법 폐지안이 변칙 상정되는 순간의 법사위 회의장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욕설과 고함이 난무하며 몸싸움에 주먹다짐까지 오가는 생생한 장면이 TV를 통해 중계되는 것을 본 많은 국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바로 그 다음 날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들 의원들은 김구, 신채호 선생까지 끌어들여 ‘공치사’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발언 수준도 대학생들의 단합대회(MT)에서나 나올 법한 것이었다.

두 의원은 정말 진지하게 발언한 것일까. 차라리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우스개를 늘어놓은 것으로 믿고 싶다. 또 두 의원의 화답을 듣고 ‘잘했어’라고 호응한 대다수 의원도 집권당으로서의 책임감은 잠시 잊어버린 것으로 생각하고 싶을 정도다. 전체 국민이 어떻게 보고 평가하는지를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지층만 염두에 두는 ‘편협한 정치’에서 열린우리당은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국민의 존경을 받는 단재와 백범 선생을 반대 여론이 많아 국민 간에 갈등을 빚고 있는 국보법 폐지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아전인수(我田引水)’가 아닐까. 이날 의총장에서 보여 준 모습이 열린우리당의 진면목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박민혁 정치부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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