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글로벌리아 1, 2’…통제로 만들어진 하나의 세계

  • 입력 2004년 11월 12일 16시 42분


◇글로벌리아 1, 2/장크리스토프 뤼팽 지음 양진성 이주영 옮김/각권 287, 378쪽 각권 9000원, 1만원 황금가지

통념과 달리 과학소설의 본령은 미래에 관한 ‘예언’이 아니다. 과학소설이 흔히 그 일을 멋지게 해 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의 본령은 추론에 바탕을 두고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즉 ‘만일 현재의 추세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이런 세상이 나올 것이다’라는 전언을 담는다. 많은 과학소설들이 우리 앞에 놓인 위험한 상황에 대한 경고인 까닭이 거기 있다. 그것들이 거의 언제나 미래의 반이상향(dystopia)을 그리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 작가 장크리스토프 뤼팽의 ‘글로벌리아’는 그리 머지않은 미래의 반이상향을 그렸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것은 통합된 세계인데, 불행하게도 테러에 대한 방어를 위해 극도로 통제된 사회다. 그런 세상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테러에 대한 대응인 사회의 통제가 통제되지 않은 과정이 되면, 우리는 숨 막힐 만큼 압제적인 사회에서 살게 된다’는 전언을 드러낸다. 테러가 이미 사회 환경의 중요한 조건이 된 지금, 이것은 중요하다.

극도로 통제된 사회는 조지 오웰의 ‘1984년’ 이후 모두에게 익숙해진 주제다. 실제 ‘글로벌리아’의 모습은 ‘1984년’에서 그려진 사회의 모습과 아주 비슷하다. 시민들이 얻을 수 있는 지식과 정보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곳곳에 설치된 감시 장치에 의해 시민들의 삶은 늘 감시되고 통제된다. 청취자가 마음대로 끌 수도 없는 공영방송은 “안전은 곧 자유입니다. 안전은 보호, 보호는 감시입니다. 그러므로 감시는 곧 자유인 것입니다”고 계속 선전한다. 그리고 지배계층은 사회 응집력과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의 적’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주인공 자신이 바로 지배계층이 만들어 낸 ‘사회의 적’이다.

장 크리스토프 뤼팽. 쉰두 살의 의학박사인 그는 젊은 시절 에티오피아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1977년에는 ‘국경 없는 의사회’ 창립에 나서 부회장이 됐다. 1997년 첫 소설 ‘아비시니아 사람’으로 프랑스 공쿠르 최고신인상을, 2001년 ‘붉은 브라질’로 공쿠르 본상을 받았다. -사진제공 황금가지

그러나 이 작품은 ‘1984년’의 현실성과 긴박감을 이루지 못했다. 탐욕스러운 기업인 혼자 짧은 시간에 온 세계 나라들을 하나의 통제된 사회로 만든다는 이야기는 극도로 통제된 세계사회의 출현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는 너무 비현실적이다. 실은 테러에 대한 설명도 없다. 어떤 집단이 어떤 상황에서 무슨 목적으로 테러를 하는지 전혀 설명이 없으니, 작품이 현실성을 갖기 어렵다. 지금의 테러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다면, 테러리스트들이 거의 다 이슬람교도들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유럽의 지식인들에겐 금기처럼 되어 있다. 프랑스인 의사이며 국제적 구호활동을 하는 작가로선 그 금기를 깨뜨리기가 어려웠던 듯하다.

이 작품을 읽노라면 SF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뜻밖의 결말’은 영화에서나 나올 만한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SF의 문법을 SF작품들이 아니라 SF영화들에서 배운 듯하다. 그래서 쉽게 읽히고 재미도 있다.

‘1984년’의 주인공이 완전히 파멸하는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의 주인공은 집권세력의 음모에 이용된 뒤 억압적 사회를 떠나 거칠지만 자유로운 황무지로 탈출하는 것이 허용된다. 집권세력이 언제라도 취소할 수 있는 그런 탈출이 과연 진정한 탈출일까? 이것은 이 작품이 던지는 여러 물음들 가운데 하나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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