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라이트, 침묵에서 행동으로]<3>시장경제 수호 목소리

  • 입력 2004년 11월 9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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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경제·경영학 교수 411명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교수들은 “국가 경제 운영 시스템이 혼란에 빠져 있고 성장동력은 죽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 분야 학자들이 이처럼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사실상 헌정(憲政) 사상 처음이었다.

이 시국선언을 ‘신호탄’으로 올 한 해 노무현(盧武鉉) 정부에 대한 경제전문가들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비교적 이념적 스펙트럼이나 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다양한 정치·사회 부문과 달리 경제학계에서는 현 정부의 정책 운영능력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그 바탕에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반(反)시장적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나 산업 구조조정 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경제체제의 붕괴가 근본 원인입니다. 학자들이 나서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이재웅·李在雄 성균관대 교수·차기 한국경제학회장)

▽“이미 이념 논쟁은 끝났다”=경제학자들이 행동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현 정부의 경제철학이 시대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다. 성장보다 분배, 경쟁보다 평등을 앞세운 정책 논리는 사회주의 실험을 통해 이미 실패로 귀결된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이다.

경제학계는 정부의 지나친 시장개입을 견제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대부분 의견이 일치한다. 홍익대 김종석(金鍾奭·경제학) 교수는 “시장경제는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적 속성을 갖고 있다”며 “정부의 역할을 중시하느냐, 시장의 기능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좌파와 우파가 결정된다면 한국의 경제학자 대부분은 우파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목소리 높이는 경제계=경제 분야의 ‘뉴 라이트’ 움직임은 관련 학회 등을 통한 공개비판은 물론 시장원리를 연구하는 전문가 모임 결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 2월 경제 관련 32개 학회는 연세대에서 공동 학술대회를 열고 현 정부의 정책 운용을 ‘아마추어리즘’으로 규정했다.

8월에 열린 한국경제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중앙대 안국신(安國臣·경제학) 교수가 “현 정부는 좌파 정권이며 좌파적 가치의 덫에 걸려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경제 수호를 위한 조직화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올해 8월 김종석 교수를 중심으로 서울대 이상승(李相承·경제학) 교수, 한국경제연구원 이주선(李柱善) 박사, 이석연(李石淵) 변호사 등 중견·소장 경제학자와 법조계 인사 등 10여명이 ‘시장제도 연구회’를 결성했다. 자유기업원도 4월 ‘시장경제사랑단’이라는 온라인 모임을 발족했다. 대학생과 교사 200명이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현재 714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이 밖에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공동대표 박효종·朴孝鍾 서울대 교수 외 8명)나 시장경제연구원(위원장 김인호·金仁浩)도 사안별로 시장원리에 입각한 성명을 내놓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판 헤리티지 재단 추진=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처럼 시장원리에 바탕한 ‘싱크탱크’를 설립하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자유주의에 사상적 기반을 두고 있는 ‘하이에크 소사이어티’(회장 김영용·金永龍 전남대 교수)는 가칭 ‘자유재단’을 세우기로 하고 기금 확보에 착수했다. 올해 말까지 50억원을 모아 재단을 만든 뒤 기금을 5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본보가 이번 취재과정에서 입수한 자유재단 출범 선언문은 “지금 한국에서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루어진 시장의 영역은 꾸준히 줄어들고, 정부의 개입이라는 모습을 한 사회적 선택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사회적 선택이 재산권의 심중한 침해로 이어진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선언문은 경제평론가 겸 소설가 복거일(卜鉅一)씨가 작성했다.

법무법인 대륙의 김대희(金大熙) 변호사는 한국판 헤리티지 재단의 설립을 추진 중이다. 김 변호사는 “재단은 대학(원)생들에게 제대로 된 보수가 무엇인지 교육하고 이들을 지원해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 육성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40∼50명의 경제학 관련 학자들과 일부 기업인들이 설립 준비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발족 시기는 내년 4월로 예정돼 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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