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48기 국수전…이창호의 벽

  • 입력 2004년 10월 12일 18시 41분


오후 8시. 10시간에 걸친 대국이 끝난 뒤 두 기사는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승패는 정해졌는데도 막판까지 격렬한 패싸움이 벌어지는 등 긴장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긴장이 풀리자 두 기사는 물먹은 솜처럼 소파형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그들은 잠시 뒤 복기를 시작했다.

두 기사는 특별한 말이 없었다. 수순대로 놓다가 한쪽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면 이리저리 변화를 만들어 본다.

두 대국자는 30여분에 걸친 복기가 끝나자 돌을 주섬주섬 바둑통에 담은 뒤 대국실을 빠져나갔다.

이 바둑의 핵심은 중앙 전투였다.

흑 69로 하변에 침입한 것이 국면의 초점을 빗나간 성급한 수. 참고 1도 흑 1처럼 중앙을 돌보는 수를 놓치면서 대세를 넘겨주고 말았다.

결정적인 패착은 흑 79. 백 80의 간단한 맥점을 깜빡한 것이다. 이창호 9단을 몰아붙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빚어낸 착각이었다. 참고 2도처럼 뒀으면 중앙 백 석 점이 잡히는 ‘참화’를 입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진행은 이 9단의 완벽한 마무리였다. 이 9단은 우상귀 백 다섯 점을 버리는 과감한 선택으로 국면을 단순화시켜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역전보다 승세를 지키는 게 더 힘들지만 이 9단은 침착했다. 원성진 5단으로서는 이 9단의 벽을 또다시 실감한 한판이었다.

이 9단은 승자 결승에 진출해 윤준상 3단과 대결을 펼치고, 원 5단은 패자부활전에서 조훈현 9단과 재기의 한판을 둔다.

192 198 204 210 216 222 232 238 244 250…84, 195 201 207 213 219 229 235 241 247 252…89, 227…20, 254…33, 266…260, 272…263, 273…167, 276…141 소비시간 백 3시간56분, 흑 3시간59분. 백 8집반 승.

해설=김승준 8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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