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세이/정윤수]올림픽선수와 함께 뒹구는 꿈

  • 입력 2004년 9월 13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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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오랜만에 지역체육센터에 들어선다. 창고에 처박아뒀던 라켓을 들고 아내와 마주 선 순간, 누군가가 셔틀콕 잡는 법부터 가르쳐준다. 가만 보니 낯익은 얼굴이다. 앗, 하태권 선수다. 가문의 영광이다. 둘러보니 꼬마들은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정지원 선수와 즐겁게 매트 위를 뒹굴고 있다. 아내는 어느 틈엔가 라켓을 던지고는 출입문으로 뛰어가고 있다. 지역 주민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 위해 문대성 선수가 들어선 것이다.

꿈인가? 물론 꿈이다. 그러나 그 꿈을 꾸고 또 꾼다면 정녕 이루지 못할 꿈은 아니다. 아테네 올림픽. 성과가 높았지만 숙제는 오히려 더 많다. 여자 핸드볼을 비롯한 이른바 ‘비인기 종목’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8강’을 이뤘다지만 전략과 전술에 대해 팬들의 실망은 대단하다. 이 와중에 불어 닥친 프로야구 병역비리는 스포츠계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문제의 발생 원인은 물론 상이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선수들의 직업 만족과 생계 안정을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공통된 과제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267명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안정적인 생계와 직업적 만족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메달리스트를 제외한 200여명의 선수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러므로 꿈이 필요하다. 제안하건대 각 지방자치단체가 국가대표 선수들을 다양하게 흡수하기 바란다. 물론 지금도 적지 않은 지자체들이 힘겹게 비인기 종목 팀을 운영하고 있다. 격려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보다 전면적인 사고가 필요한 상황이다. 주민의 삶과 동떨어진 별도의 ‘팀’이 아니라 지역 출신 선수들과 주민들을 결합시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공간. 최근 몇 년 사이에 지역마다 어마어마한 문화체육 시설이 들어섰다. 그런데 ‘콘텐츠’가 없어서 텅텅 비어 있다. 그 콘텐츠가 바로 일급의 선수들 아닌가. 다음으로 예산. 이는 주민들이 일정한 세금을 낸 바 있으며 부족하면 저렴하나마 이용요금을 내면 될 일이다. 마지막으로 제도 개선. 이는 중앙정부의 과제다. 군 입대를 앞둔 선수는 ‘공익근무’ 개념으로, 은퇴한 선수는 ‘생활체육 지도’ 차원에서 흡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수들은 오전에 자기 훈련에 맹진하고 오후에는 일급 코치로서 지역 주민과 땀을 흘리는 것이다. 휴전선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만큼은 아니지만 이 또한 지역사회와 나라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공익근무 아닌가.

중앙정부의 인식 전환이 절대적이다. 스포츠가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이 이 살벌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중한 비타민임을 믿는다면 중앙정부가 인식의 대전환을 감행해 지자체와 함께 제도 개선, 인력 흡수, 삶의 질 개선 등의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

올림픽에 출전했던 일급 선수들이 한반도 곳곳으로 흩어져 이 비좁은 땅을 활기차게 만드는 꿈.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가. 우리의 삶은 보다 경쾌해질 것이며 선수들 또한 지역 사회의 일원이라는 자긍심으로 안정적이고 소박한 삶을 충분히 누릴 것이다. 함께 상상해 보자. 이번 주말, 이봉주 선수가 지역체육센터에 온다. 당신은 그날 세상 모르고 드러누워 낮잠이나 자겠는가.

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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