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48>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9월 3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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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침과 움츠림(1)

샛길로 달아나 함곡관을 넘은 장량이 관중(關中)으로 들어간 것은 한왕 유방이 아직 폐구(廢丘)에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한왕은 대쪽을 쪼개는 듯한 기세로 옹왕 장함을 죽이고 새왕 사마흔과 적왕 동예의 항복을 받아 삼진(三秦)을 평정했다고는 하나 아직 관중이 온전히 한나라 영토가 된 것은 아니었다.

왕을 죽이거나 사로잡고 도읍만 빼앗는다고 그 땅이 평정된 것이 아님을 잘 아는 한왕은 진작부터 장수들을 여러 곳에 나누어 보내 옛 진나라 땅을 차근차근 거두어들여 왔다. 진나라의 학정에 시달려온 데다 수십만 자제를 데려가 죽게 한 장함을 미워하는 관중 백성들은 대개 한군(漢軍)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하지만 삼진의 왕이 모두 항복한 뒤에도 여전히 세상이 바뀌었음을 알지 못해 맞서는 곳이 있었으니, 농서((농,롱)西)와 북지(北地)가 그랬다.

한왕은 역상((력,역)商)을 농서도위((농,롱)西都尉)로 삼고 따로 한 갈래 군사를 나눠주며 농서와 북지를 치게 했다. 그러나 북지에서는 장함의 아우 장평이 무리와 함께 버티고 있었으며, 어찌된 셈인지 농서도 군민이 한 덩이가 되어 한군에 굳게 맞서왔다. 이에 한왕은 삼진의 항복을 받자마자 다시 장군 근흡(근(섭,흡))에게 한 갈래 군사를 딸려주며 역상을 돕게 했다.

“관중을 온전히 평정하지 않고는 함곡관을 나갈 수 없다.”

한왕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른 몇 곳에도 군사를 갈라 보내고 자신은 대군과 함께 폐구에 머물러 잠시 숨을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함곡관에서 빠른 말로 달려온 군사가 알렸다.

“장(張)자방 선생께서 며칠 전 관(關)으로 드셨습니다. 홀로 먼 길을 무리해 달려오시는 바람에 노독(路毒)이 들어 지금 수레로 모셔오고 있는 중입니다. 대왕께서 기뻐하실 일이라 여겨 특히 이렇게 달려와 아룁니다.”

장량이 강건하지 못하다는 것은 한왕도 잘 알고 있었다. 도인(導引)이나 벽곡((벽,피)穀) 같은 도가(道家)의 비법으로 몸을 단련하고 있었지만 장량은 평소에도 길이 멀면 말보다는 수레를 타야 할 만큼 허약했다. 거기다가 또 지난봄 포중(褒中)에서는 그렇게 붙잡아도 기어이 한왕(韓王) 성(成)을 찾아 떠난 사람이었다. 그런 장량이 여섯 달도 안돼 그리 급하게 관중으로 되돌아 왔으니 한왕은 그 까닭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방 선생이 갑자기 무슨 일이라더냐? 어쩐 일로 몸져누울 만큼 다급하게 관중으로 돌아오시게 되었다더냐?”

“선생께 직접 들은 바는 없으나, 관외(關外)에 풀어놓은 눈과 귀로 알게 된 바로는 항왕에게 죄를 입은 것 같습니다. 새로 한왕(韓王)이 된 정창도 군사를 풀어 누군가를 쫓고 있고, 섬성(陝城)의 군사를 배로 늘린 하남왕(河南王) 신양(申陽)도 함곡관으로 드는 길을 엄하게 끊고 있는데, 둘 모두가 항왕의 명을 받아 자방 선생을 사로잡으려 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곁에서 듣고 있던 한신이 불쑥 말했다.

“신이 헤아리기로는, 그렇다면 한왕 성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대장군.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한왕이 어리둥절해 물었다. 한신이 가벼운 한숨과 함께 차분하게 대답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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