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칵테일 슈가’…당신도 짜릿한 불륜을 꿈꾸나요

  • 입력 2004년 8월 20일 17시 40분


《올해 데뷔 10년째인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가 고은주(37)의 첫 작품집이다. 스무 살때부터 30대 후반의 유부녀들까지 여성들의 눈동자에 비친 만화경 같은 세상을 담았다. 재치 있는 세태 풍자 소설들을 묶은 것이다.》

◇칵테일 슈가/고은주 지음/301쪽 9000원 문이당 펴냄

가장 잘 읽히는 작품은 집이 경매로 넘어갈 만큼 미래가 흐릿해진 재수생 유리가 포르노 카메라 앞에 서게 된 과정을 다룬 ‘유리’다. 위기에 빠진 부모로부터 방치된 유리는 자기 알몸을 찍는 캠코더 앞에서 그다지 주춤거리지 않는다. 미래에 대해 큰 집착이 없는 것이다. 그녀는 체험의 강도를 높여 가다가 끝내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스너프 필름’ 촬영까지 하게 된다.

원래 원고지 700장이던 소설을 200장으로 줄인 탓에 읽히는 속도가 빠르다. ‘유리’라는 독특한 캐릭터에 묘한 현실감이 감돈다. ‘중매 시장’의 현실에 눈 뜬 조숙한 친구 진아가 유리한테 털어놓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진아는 몸매 날렵하고 춤 잘 추고, 돈도 많은 일명 ‘브래드’와 걸핏하면 같이 자지만 결혼은 하지 않겠다며 이렇게 말한다. “걘 비전이 없잖아. 10년 후엔 기껏 장사나 하고 있겠지. 나보다 덜떨어졌던 여자 애들이 의사 부인, 검사 부인 소리 들으면서 잘난 척하는 꼴 난 못 봐.”

원대연기자

‘조각 무늬 그림’과 ‘너의 목소리’는 불륜을 다뤘다. ‘조각 무늬 그림’에는 애인인 유부남의 부인과 만나기로 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다. ‘너의 목소리’는 남편의 젊고 도발적인 애인과 노골적인 전화 통화를 하게 된 삼십대 후반 여성의 초상화가 담겼다.

타이틀 작품인 ‘칵테일 슈가’는 불륜에 몸을 내맡긴 남녀들이 사실은 체인처럼 엮여 있다는 ‘다중 불륜’의 세태를 다뤘다. 칵테일 슈가는 원래 칵테일파티에 나온 음료수들에 쉽게 녹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막대사탕. 이 작품에선 이 남자 손에서, 저 여자 손으로 돌고 돈다. “애인하고 같이 누워 있는 게 정말 짜릿하지만, 와이프(혹은 남편)한텐 미안한데” 하고 생각하는 불륜 남녀의 뒤통수를 치는 소설이다.

중진 작가 조성기 숭실대 교수는 이 작품집 해설 제목을 ‘거대한 불륜의 윤무(輪舞)’라고 짓고, 이 작품집에 나오는 노골적인 장면들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단편 ‘조각 무늬 그림’에 나오는 불륜 여성은 여성의 음부처럼 보이는 꽃들을 주로 그린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 조각들을 맞춰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만약 이 그림에서 성(性)적인 상징을 본다면 그건 바로 당신 스스로의 집착을 보고 있는 겁니다.” 불륜에 나섰으면서도 고상하게 시치미 뚝 떼는 현실, 그게 바로 고은주가 그리려고 한 세태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