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미진/김치, 그리고 아테네

  • 입력 2004년 8월 8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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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을 다니다보면 집만큼이나 그리워지는 것이 있다. 김치와 컵라면이다. 컵라면에 꼬마김치 한 봉지만 있으면 그 어떤 성찬도 부럽지 않다. 나도 한때는 햄버거만 먹고 석 달 열흘은 너끈히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김치 없는 식사가 불가능하다. 라면도 계속 먹으면 안 좋다는 걸 알면서 자꾸 먹게 된다. 김치와 라면에는 특유의 중독성이 있다. 어쨌거나 김치와 라면이야말로 심리적 경제적 육체적 위기에서 여행자를 위로하는 청량제이자 비타민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그리스에 갔을 때 일이다. 현지 안내인의 차를 타고 아테네를 구경했는데 갑자기 차 안의 냄새가 묘해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날씨에 꼬마김치가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 같이 간 친구의 여행가방에 꼬마김치가 10봉지나 들어 있었다. 현지 안내인은 표정이 굳어져 입을 다물어버렸다. 우리끼리 사후대책을 논의했지만 김치를 버린다는 것이 거의 죄악처럼 느껴졌다. 아직 한 봉지도 시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크레타행 여객선에 올라탔다. 객실로 들어선 순간, 김치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현지 안내인은 가방만 던져놓고 밖으로 나갔다. 김치 보따리를 처치하고 객실을 환기시키고 향수를 뿌리는 등 한동안 법석을 피웠다. 사태가 진정되자 친구가 컵라면을 꺼냈다. “한 개씩 먹을까?” 식당에서 뜨거운 물을 얻어 갑판으로 올라갔다. 친구는 갑판 어딘가에 묻어둔 꼬마김치 세 봉지를 꺼내왔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만찬이었다. 그 후, 여행 중에 만난 한국인들에게 우리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크레타를 오가는 ‘크노소스 팔레스’ 여객선을 타거든 갑판에 숨겨놓은 김칫독을 찾아보세요. 꼬마김치 일곱 포기가 묻혀 있을 거예요.”

▷외국여행을 오래해 본 사람들은 김치의 소중함을 안다. 며칠 전,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을 위해 아테네로 떠났다. 그들의 식단을 차리기 위해 전문영양사들도 함께 떠났다. 비록 칼로리는 낮지만 그렇다고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 바로 김치다. 그리스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국위선양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우리 선수들에게 김치의 활력을 기대해본다. 한국 선수들, 김치 먹고 파이팅!

김미진 객원논설위원·소설가 usedrea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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