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78>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6월 14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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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王이 되어(1)

회왕(懷王)을 의제(義帝)로 올려 세운 항우는 이어 제후와 장상(將相)들에게 천하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로써 진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고 시행한 군현제(郡縣制)는 십여년 만에 폐지되고, 천하는 다시 하 은 주 삼대(三代) 이래의 봉건(封建)제도로 돌아가게 된다. 제도적으로는 더욱 효율적인 고안인 군현제를 버리고 이미 오래전부터 그 파탄을 드러내고 있는 봉건제를 되살린 데서 항우의 보수반동 성향을 따지는 사람도 있다.

먼저 항우는 스스로 서초패왕(西楚覇王)이 되어 양(梁)나라 초(楚)나라 땅 아홉 군[구군]을 봉지로 삼고 팽성(彭城)에 도읍하기로 했다. 서초(西楚)는 회수(淮水) 북쪽 패(沛) 진(陳) 여남(汝南) 남군(南郡)을 아울러 이른다는 말도 있고, 팽성을 바로 서초라고 이른다고도 한다. 어쨌든 항우는 옛 초나라를 중심으로 가장 기름지고 군사적 요충이 되는 땅을 차지함으로써, 천하 서른여섯 군(郡)의 가운데 노른자위가 되는 아홉 군을 혼자 다스리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패왕(覇王)이란 칭호에 대해서도 항우의 좁은 안목과 보수적 사고를 탓한다. 봉건제를 부활시킴으로써 왕의 칭호를 쓰게 될 다른 제후들과 자신을 변별하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춘추시대 오패(五覇)에서 따온 듯한 패(覇)란 말은 두 가지 부담이 있었다. 하나는 그 말이 왕도(王道)나 인의(仁義)보다는 권모술수와 호전성을 상기시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게 이미 몇백년 전의 권력재편 방식이었다는 데서 온 의고적(擬古的)이고 반동적인 인상이었다.

하지만 항우는 자신의 칭호와 차지하게 된 땅에 매우 만족했다. 그는 패왕이란 칭호에 실린 기세를 사랑하였고, 어려서 고생하며 떠돈 고향 인근의 땅 거의 모두를 봉지로 차지하게 된 게 기뻤다. 범증도 항우가 당장 황제가 되겠다고 나서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여겨 그런 결정을 말리지 않았다.

항우의 몫이 결정되자 그 다음은 패공 유방의 차례였다.

“패공 유방이 마뜩지 않은 속내를 비친 적이 있으나 이미 화호하였고, 또 회왕은 지난날의 약조대로 하라 하니, 이대로라면 관중은 고스란히 패공에게 바쳐야 하게 생겼소. 하나 왠지 그를 관중왕으로 삼기는 싫구려. 아부(亞父)께서는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군막 안에서 범증과 이마를 맞대고 의논하던 항우가 자신의 봉지(封地)와 왕호(王號)를 정할 때와는 달리 그답지 않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러기에 홍문의 잔치 때 그를 죽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유방에게 관중을 준다면 이는 범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범증이 그렇게 항우를 나무라 놓고 다시 정색을 하며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유방에게 파(巴·지금의 중경을 중심으로 하는 사천성 동부 일대)와 촉(蜀·성도를 중심으로 하는 사천성 중서부)을 주어 거기에 묶어두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내 듣기로 파와 촉은 길이 험하고 땅이 천하 한 끄트머리에 치우쳐 있어 진나라에서도 죄수들이나 유배 보내는 곳이라 들었소. 그런 땅에 어떻게 패공을 보낼 수 있겠소?” “하지만 파와 촉도 관중의 땅입니다. 만약 패공이 그리로 가기를 마다하면, 대왕께서는 그 죄를 물어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를 잡아 죽이시고 후환을 없애십시오.”

그런데 마침 항백이 항우의 군막으로 들어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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