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이 천사]<22>과천 노인복지관 인터넷강사 곽갑순씨

  • 입력 2004년 5월 28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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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뿌신 선생님 괴롭힙니다. 한마디 묵고자 켬퓨터 앞에 안잤습니다.…’

28일 오후 3시. 정모 할머니(65)의 e메일을 확인하는 노인 인터넷교육 자원봉사자 곽갑순씨(37·여·경기 과천시 별양동)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메일을 보내기 위해 한자 한자 정성껏 자판을 눌렀을 정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

“배우기 시작한 지 한 달 반 정도 된 분인데 음악 내려받는 법 물어 보려고 메일 보내신 거예요.”

곽씨가 노인들을 상대로 인터넷 교육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2001년. 당시 과천시 문원동에 있는 노인복지관에서 60대 이상을 위한 컴퓨터교실을 열면서 과천시에서 전산직 공무원으로 일했던 곽씨에게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문의해 온 것이 인연이 됐다.

그때부터 평소에는 매주 2회, 방학 때는 보름 동안 매일 복지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인터넷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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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씨는 “나이가 드셔서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에 e메일 주고받기를 익히는 데만 3주 정도 걸리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음악 내려받기, 온라인 예약까지 하시는 분들도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처음엔 어린 딸이 ‘엄마는 왜 집에 있지 않고 자원봉사만 하러 다녀? 나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더 좋아?’라고 떼를 써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어르신들이 하도 기다리셔서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고교 교사인 남편(40)의 월급만으로 네 식구가 생활하느라 살림도 빠듯하지만 남편이 적극적으로 후원해주고 있다.

방학 때는 인근 청소년들을 위한 봉사프로그램을 마련해 노인들과 서로 e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그동안 곽씨를 거쳐 간 ‘노(老)학생’의 수가 어느덧 350여명에 이르는 등 인기강좌로 자리잡았다.

그는 “접수기간이 되면 새벽부터 줄 서서 기다리는 분들이 있다”며 “가끔 접수하지 못한 분들이 교실 문 밖에서 기다리다 빈 자리가 생기지 않아 힘없이 되돌아가곤 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곽씨는 임신 7개월. 8월이면 셋째를 출산하지만 여전히 한 회도 거르지 않고 복지관을 찾아 인터넷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자에게 e메일을 보내고 ‘신세대 할머니 짱’이라는 답장을 받았을 때 가장 기분이 좋으시대요. 인터넷을 통해 삶의 재미를 되찾았다는 분들을 볼 때마다 정말 흐뭇합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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