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대중독재’…독재의 기억 뒤편엔 대중들의 환호

  • 입력 2004년 5월 21일 17시 27분


◇대중독재/임지현 김용우 엮음/589쪽 2만5000원 책세상

독재든 민주주의든 모든 체제의 성공 여부는 집단 구성원들이 그 정권을 얼마나 지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어떤 독재 정권도 대중의 합의나 동의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임지현 교수(한양대·서양사)는 “권력을 독점한 사악한 소수가 폭력과 강제를 행사해 다수의 무고한 민중을 억압하고 지배했다는 흑백논리나, 폭력과 억압을 통한 강압적 지배라는 단색의 이미지로 포착하기에 근대 독재의 현실은 몹시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대중독재’다. 국내외 학자 19명이 참여해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프랑스의 비시 정권, 스페인의 프랑코 체제, 소련의 스탈린주의, 2차 세계대전기 일본의 총력전 체제,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 체제 등 세계 각국의 독재를 분석했다. 이들은 2003년 10월 ‘강제와 동의-대중독재에 대한 비교사적 연구’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어 발표와 토론을 했고, 이 책은 그 성과를 모은 것이다.

연구자들은 소수의 독재자가 어떻게 정권을 장악하고 만행을 저질렀느냐 하는 문제의식으로 접근하는 대신, 근대사 속에서 여러 형태의 독재 체제가 각각 생성·유지될 수 있었던 물리적 조건을 분석하며 그 독재의 불행한 경험을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나치는 일자리 제공과 가난 퇴치의 약속으로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를 얻었고, 스탈린주의는 대숙청을 통한 사회적 이동의 증대와 공공영역에서의 고용 창출을 통해 밑으로부터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또한 박정희 체제는 고도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노동 억압 정책에 대한 불만을 잠재웠던 ‘개발독재’의 전형이었다. 이처럼 독재의 이면에는 이 독재를 용인 또는 지지하는 ‘대중’이 있기 마련이었고, 이런 ‘대중독재’의 기반 마련을 위해 대규모 공공사업과 같은 정책을 통한 실업의 축소, 임금의 증대 등 대중들이 체감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의 조성이 필수적이었다.

연구자들이 ‘대중독재’라는 이름 아래 독재의 아픈 기억을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이유는 역사의 청산이 소수의 독재자에 대한 단죄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인간적 행위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소수의 권력 핵심을 실정법으로 단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나머지 대다수에게 역사적 면죄부를 발부하는 식으로 작동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취하는 역사 청산의 방식은 ‘드러냄’이다. 법정의 심판 대신에 ‘대중독재’의 합의 또는 동의가 이뤄졌던 역사를 드러냄으로써 과거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도록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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