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실적 급급했던 의원입법

  • 입력 2004년 5월 16일 18시 43분


요즘 17대 국회 개원(開院) 준비가 한창이다.

특히 전체 당선자 중 62.5%에 달하는 187명의 초선 당선자들은 의정 활동에 승부를 걸기 위해 분야별로 박사급 전문가를 보좌진으로 영입하는 등 남다른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는 총선민의가 “제발 싸우지 말고 정책 경쟁을 해 달라”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이런 와중에 국회 사무처가 최근 초선 당선자 연수를 위해 발간한 ‘법제 및 법안심사’ 자료 중 16대 국회 성적표가 눈길을 끈다. 핵심은 16대 국회에서 의원들이 직접 발의한 법안 중 실제 본회의에서 통과된 가결률이 27%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16대 국회의 입법안 제출건수는 총 2507건. 이 가운데 정부 제출이 595건, 의원 발의가 1912건으로 의원발의 법안 중 가결된 것은 겨우 516건이었다. 의원들이 낸 법안 10건 중 실제 법안으로 빛을 본 것은 3건도 못 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수치는 의원입법만을 놓고 볼 때 9대 국회 이래 가장 낮은 것이다. 같은 16대 국회에서 정부제출 법안이 가결된 비율 72%(431건 통과)와는 아예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물론 15대 국회 이후 의원입법안이 숫자상 크게 증가하면서 활성화된 것을 다른 의미에서 ‘정책국회’ 시대를 앞당기는 청신호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의원들이 외형적인 입법추진 실적에만 집착할 경우 ‘실적주의’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듯 하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의 법안 준비 능력이 상당한 정보와 인력을 갖춘 정부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법안 발의단계에서부터 치밀한 준비 없이 건수에 집착하는 ‘아니면 말고’식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명 한명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제출하는 권리만 행사하고 신중한 법안마련과 통과를 등한시한다면 스스로의 권위를 찾기 힘들 것이다. 17대 국회 당선자들은 개원을 하면 ‘좋은 법을 만들고 통과시켜 낙제점을 받은 16대 국회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다짐부터 하면 어떨까.

정연욱 정치부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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