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호근/적록동맹(赤綠同盟)

  • 입력 2004년 5월 2일 18시 47분


적록동맹이란 노동자-농민의 정치적 연대를 뜻한다. 원래 노동자와 농민은 물과 기름이다. 노동자는 무산계급, 농민은 유산계급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농민을 ‘포대자루 속의 감자’로 비유했다. 애지중지할 소유물이 있고 서로 떨어져 살기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게 농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농민은 끈끈한 연대감을 필요로 하는, 혁명에는 잘 맞지 않는 그룹이다. 농민은 생명을 앗아갈 정도의 착취에 시달려야 비로소 움직인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이런 점을 활용해 농촌사회주의를 일궈 냈다.

▷대중정당이 태동할 무렵인 1920년대 유럽에서 노동자와 농민은 서로 독립적인 정당을 결성했다. 노동계급은 사민당 혹은 노동당 깃발 아래 모였고 자영농은 농민당을 만들어 현재까지 독립정당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 왔다. 비록 정보화시대가 농촌 인구를 고갈시킬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고는 있지만 곡물 육류 화훼가격 하락을 최대한 버텨 내면서 힘겹게 연명하는 중이다.

▷유럽 각국에서 노동당과 농민당의 정치적 연대인 적록동맹은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성과를 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사회민주주의국가인 스웨덴에서조차 두 차례에 불과했다. 20년대 사민당이 보수세력 견제를 위해 농민당에 한시적 지원을 요청했던 것이 최초의 연대였고, 50년대 복지국가를 구축할 때 농민당 지지를 얻어 냈던 게 마지막이었다. 58년 스웨덴 농민당은 노동자들에게만 부가연금 혜택을 부여했던 사민당과 결별했다. 이후 농민당은 자유당이나 보수당과 선별적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한국의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지난주 처음으로 정책협의회를 개최했다. 겉으론 화기애애했지만 내심 긴박감이 넘쳤을 것이다. 2004년의 지구촌에서 노동자와 농민이 단일 정당을 결성하고 있는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기에 노동자와 농민의 이해가 맞붙을 개연성이 많기 때문이다. 전농이 당 조직에 농민 몫을 요구하고 농민을 상기시키는 당명 개정을 요구한 것은 예견된 일이다. 초기 단계이기에 일단은 무리 없이 넘어갔겠지만, 농산물 가격과 제조품 가격 중 어느 하나를 희생시켜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민노당이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할는지 궁금하다.

송호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 hknso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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