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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18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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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을 열자 몇 만 달러씩 묶은 달러 뭉치와 거액의 엔화 뭉치, 마분지로 싼 고액권 100장 묶음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보석장 서랍엔 금괴가 그득했다.
정신없이 항공 백을 채우다보니 무게만 70kg. 대충 따져 봐도 50억원이 넘었다. 서울시내 집 한 채 값이 700만원 정도 할 때였으니.
그 집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매우 가까웠던 재벌 첩(妾)의 집이었다.
조세형은 신출귀몰했다. 권력층과 부유층의 집을 단골로 털었다. 그가 들춰본 유력 인사들의 ‘곳간 속’은 요지경이었다. 구렸다. 인구에 회자됐던 ‘물방울다이아’에선 악취가 났다.
돈 푼깨나 있어 보인다 싶어 들어가 보면 여지없이 행세깨나 하는 집이었다. 어음을 도난당한 피해자들은 ‘뇌물 출처’가 들통날까봐 전전긍긍했다. “털어서 불안한 도둑은 ‘작은 도둑’이요, 털려서 불안한 도둑이 ‘큰 도둑’이다.”
1983년 4월 재판을 받던 중 탈주극을 벌였던 조세형에게 징역 15년에 보호감호 10년의 중형이 선고된다.
절도범으로는 사상 최고형이었다. 권문세가의 장롱을 뒤진 괘씸죄에다 그를 환갑이 훨씬 넘을 때까지 독방에 처넣어 ‘입’을 막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두 손과 두 팔이 등 뒤로 묶인 채 엎어져 개처럼 밥을 핥아먹었지요….” 햇빛을 볼 수 없는 1평 독방에는 하루 24시간 그를 감시하는 CCTV가 돌아가고 있었다.
청송교도소 직원들은 혀를 찼다. “저놈이 미쳐버리지 않는 게 희한하다.”
1998년 15년 만에 출감한 조세형은 신앙인으로 새 출발했으나 ‘새 사람’이 됐다던 그는 그 이태 뒤 일본에서 ‘원정 절도’를 하다 다시 붙잡혔으니!
“절도는 병”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조세형. 그는 결국 그 절도의 습벽(習癖)을 이겨내지 못한 것일까.
조세형. 그는 끝까지 자신을 믿었던 사람들까지 저버리고 말았으니, 그의 ‘손버릇’은 정녕 원죄(原罪)였던가.
그는 자신의 ‘영혼’까지도 훔친 도둑이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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