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나는 걷는다'…걷기로 찾은 '느림과 침묵'

  • 입력 2003년 12월 19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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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의 저자 올리비에는 60대의 나이로 3년 동안 아시아 대륙 1만1000여km를 걸어서 여행했다. 종착지인 중국 시안의 종루 앞에 선 저자. 사진제공 효형출판

‘나는 걷는다’의 저자 올리비에는 60대의 나이로 3년 동안 아시아 대륙 1만1000여km를 걸어서 여행했다. 종착지인 중국 시안의 종루 앞에 선 저자. 사진제공 효형출판

◇나는 걷는다(1∼3권)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고정아 옮김/각권 446쪽, 410쪽, 469쪽 각권 9800원 효형출판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西安)까지 1만1000여km를 여행하기로 작정했던 1999년,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이는 예순 한 살이었다. 한 해 전 그는 ‘파리마치’ ‘르 피가로’ 등에서 보낸 30년간의 정치부 경제부 기자 생활을 마감했다. 늘 함께하는 탐험을 꿈꾸었던 아내는 이미 10년 전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두 아들과 친구들이 그에게서 보고자 했던 행복의 모습은 ‘침착하게 체념한 듯, 벽난로 옆에 앉아 책을 읽거나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 늙어가는 평화로운 연금생활자’였을까?

그러나 저자는 여전히 ‘머나먼 초원과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과 느낌이 다른 태양빛 아래 몸을 맡기는 것’을 꿈꾸었으며, 무엇보다도 ‘느림과 침묵’에 굶주려 있었다.

‘나는 너무나 바쁘게 뛰어다녔다. …우스꽝스러운 필요성 때문에 항상 군중의 물결 속으로 떠밀려 들어가 끝없이 움직이고 더 빨리 뛰어다녀야 했다….’

저자는 여행 방식으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동 방법인 ‘걷기’를 택했다. 그것이 길과 역사, 사람을 ‘접촉’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1년에 3개월씩, 첫해는 이스탄불에서 이란의 테헤란까지, 둘째 해에는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까지, 셋째 해에는 마침내 시안까지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계획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첫해의 도전에서 그는 아메바성 이질에 허를 찔려 터키 국경을 넘지 못하고 에르주룸에서 멈추고 만다. 그러나 2000년 봄 그는, 전해 7월 자신이 열에 들떠 쓰러졌던 바로 그 초원에서 여정을 다시 시작했다.

환갑을 넘긴 저자는 걸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신의 몸을 믿었다.

‘우리 몸은 약점들을 그대로 두지 않고 복구하고 또 연구한다. 어떤 근육이 허약한지 움츠러들었는지 판단해서 그 부분에 영양을 공급하고 숨통을 트게 해줌으로써 마침내 균형을 이루게 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때 평화로움과 기쁨의 시간이 오는 것이다. 걷는 것은 조화로움을 만들고 또 자리 잡게 한다.’

그가 가진 두 개의 플라스틱 카드, 즉 신용카드와 전화카드는 실크로드에 점점이 뿌려진 작은 마을들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이곳에서 숙식과 안전을 해결해 주는 것은 거창한 국제교류도, 몇 푼의 돈도 아니다. 그것은 불안한 가운데 쭈뼛거리며 다가가는, 나와 정말 비슷하지만 또 매우 다른 이 인간 형제들의 손에 달린 것이다.’

2001년 7월 10일 저자는 마침내 시안에 닿았다. 그리고 1만1000여km의 도정에서 여러 나라 말로 들어야 했던 질문, ‘이렇게나 먼 곳에서 무엇을 찾으려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다만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굴복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가야만 했다. 살아있는 한, 인간은 가야 하니까.”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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