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오감을 즐겁게… “오늘은 박물관 가는 날”

입력 2003-11-13 16:38수정 2009-09-28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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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여성(왼쪽 둘)과 남성(오른쪽)의 전통의상.티베트박물관 이종승기자

《1851년 프랑스 물리학자 장 베르나르레온 푸코는 파리의 판테온 천장에 길이 67m, 추 무게 28kg의 진자를 매달고 운동 실험을 해 지구가 자전함을 증명했다. 사람들은 그 진자를 '푸코 진자'라고 불렀다. 130년뒤 이탈리아 기호학자이면서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푸코 진자를 소재로 '푸코의 진자'라는 소설을 썼다.

소설의 주인공 카소봉이 죽음을 기다리며 지켜보던 푸코 진자는 현재 파리국립기술공예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푸코 진자를 소설 속 음모가인 성당기사단원들은 지구의 중심이라고 여겼다. 에코는 이를 아주 지적이고 신비로운 이야기의 소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박물관에 찾아가 푸코 진자를 보는 사람들은 푸코의 과학지식과 에코소설의 재미를 함께 맛본다. 박물관 하면 오래된 유물들이 유리상자 안에 죽은 듯 놓여있고 난해한 단어들로 이뤄진 설명카드가 붙어 있는곳, 또는 아이들 학교 숙제를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긴 사람의 대열에 서있는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곁에는 '푸코 진자' 같은 흥미와 휴식을 주는 박물관들이 보석처럼 숨어있다.》

●쉬어가는 박물관

박물관은 피로하다. 그 안을 걸어야 한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어려운 전시물 때문에 생기는 심리적 포만감과 지루함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박물관 피로’를 모르는 공간도 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티베트박물관은 60평이 채 안되는 2층 건물이 전시공간의 전부지만 그 안은 신영수 관장(51)이 10년간 티베트를 여행하며 모은 라마승 의복, 제기, 불상, 만다라 등 종교적 향취로 가득하다. 여기에 천장이 유리로 돼 빛이 잘 드는 1층 공간에서 티베트 명상음악을 들으며 무료로 제공되는 한 잔의 차를 마실 때 피로는 오간 데 없다.

민속 부적과 민화 등을 모아 전시하는 가회박물관은 종로구 가회동 골목 한 자락에 자리 잡은 소박한 ‘ㄱ’자 형 한옥이다. 민화, 부적 말고도 사악한 기운을 쫓는다는 벽사그림과 통일신라시대 각종 기와도 볼 수 있다. 직접 부적을 찍고, 귀면와(鬼面瓦)를 탁본할 수도 있다. 물론 통나무 의자에 앉아 녹차를 마실 여유도 있다.


△소박한 'ㄱ'자 한옥의 가회박물관. △막사기, 솥, 소반 등으로 재현한 전통 부엌. 떡. 부엌살림박물관. △다식의 문양을 찍어내는 다식판. 두루뫼박물관

경기 고양시의 중남미문화원 병설 박물관에는 중남미 카리브해 연안 문명의 골동품과 유물들이 이국적인 건물과 야외 정원에 전시돼 있다. 주중에는 하루 전 예약을 하면 점심시간에 스페인 전통 음식인 빠에야를 맛볼 수 있다.

경기 용인시에 자리잡은 한국등잔박물관은 수원 화성의 성곽 이미지를 따서 만든 등잔 모양 건물의 테마박물관이다. 여든을 넘긴 김동휘옹이 40여년간 모은 각종 전통 등잔이 박물관 1, 2층에 전시돼 있다. 800여평 야외 전시장에는 바위와 나무, 연못이 어우러져 있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전국 박물관에 대한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www.serimuse.org)를 열었다. 이 사이트가 제시하는 박물관의 첫째 조건은 ‘쉬고 올 수 있는 곳’이다.

●재미있는 박물관

박물관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수집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시물 자체가 너무 경직된 옛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서이기도 하다. 박물관은 유물뿐만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다양한 물건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거기에 재미가 있다.

문화평론가 이어령 전 이화여대 교수의 부인 강인숙씨가 종로구 평창동에 세운 영인문학관에서는 문인들의 초상화를 만날 수 있다.

이 교수가 1972년 ‘문학사상’을 창간했을 때 표지에 문인들의 초상을 싣기로 한 뒤 85년 주간을 그만둘 때까지 104점의 문인 얼굴이 남았다. 문인들의 자필 원고와 화가와 작가들이 부채에 그린 선면화(扇面畵) 100점도 볼 수 있다. 문청(文靑)을 꿈꿨던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가볼 만하다.

재미로 말하자면 만화만한 것이 또 있을까.

문화 도시의 이미지를 굳혀가는 경기 부천의 종합운동장 안에는 한국만화박물관이 있다. 한국 만화의 발전사, 만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만화잡지의 변천, 역대 만화가들이 내놓은 사진과 수십 자루의 펜 등 소장품 등이 전시되고 있다. 15분짜리 단편만화영화도 상영하고 만화책을 볼 수 있는 자료실도 있다. 어른들은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곳이다.

종로구 와룡동에 지난해 개관한 떡·부엌살림박물관은 이름부터 정겹다.

보기 힘든 각종 떡 조리기구와 부엌살림에 쓰이던 옛 물건들을 모은 이 박물관을 돌아보면 다양한 색과 모양의 떡들 때문에 관람은 뒷전이 되기 십상이다. 떡에 마음이 팔렸다면 1층의 떡카페 ‘질시루’에서 맛을 보는 것도 좋다.

티베트 여성의 장신구.

●체험하는 박물관

티베트박물관 신영수 관장은 자칭 박물관 컨설턴트다. 30여년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모은 각종 유물들로 최근 다양한 박물관을 열었거나 다른 사람의 박물관 개관을 도와줬다. 앞으로 인형, 완구, 복식자료 등 10여 종의 박물관을 열 계획이다.

신 관장이 생각하는 박물관은 편안하고 수집품을 만져볼 수 있는 곳이다. 차(茶)박물관이면 차 그릇을 만져보고 그것을 이용해 차를 마시는 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 고양의 곡릉천과 원당천이 만나는 곳에 있는 테마동물원 쥬쥬에서는 동물들과 직접 만나 먹이를 주고 쓰다듬을 수 있다. 오랑우탄 토끼 사슴 등이 시간대별로 관람객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어린이들의 자연생태학습장 역할을 한다.

경기 파주의 두루뫼박물관은 조상의 손때 묻은 생활용품들을 모아 전시해 놓았다. 삼국시대의 토기와 고려 조선시대의 도자기 그리고 근대에 이르러 사라진 옹기와 목물 등 1500여점이 전시됐다. 이곳에서는 벼 훑기, 새끼 꼬기 등의 체험과 단체로 가면 감자 구워먹기나 주먹밥 해먹기를 할 수 있다. 다듬이질, 제기차기, 널뛰기, 절구질도 할 수 있다.

역시 파주에 있는 영집궁시박물관은 수대에 걸쳐 전통화살 장인의 길을 걸어온 중요무형문화재 유영기씨가 세운 활과 화살 전문박물관. 각종 활과 화살 및 쇠뇌 그리고 활쏘기에 필요한 각종 용품 등이 유물과 복제품으로 전시돼 있다. 한국의 전통 활쏘기와 쇠뇌쏘기를 직접 해볼 수 있다.


채용박람회에 몰린 수많은 구직자들. 취업난을 실감할 수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다가서는 박물관

삼성경제연구소 박물관 사이트를 운영하는 정책연구센터 전영옥 수석연구원(도시공학 박사)은 “박물관은 도시의 쾌적함(amenity)을 완성하는 문화 공간의 한 요소”라며 “문화 인프라들을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쉽게 가볼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박물관들은 접근이 쉬운 곳이 많지 않다. 위의 박물관들도 찾아가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곳이 많고 도심에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곳도 있다.

박물관에서 굳이 지식을 쌓을 필요는 없다. 모르는 단어가 많아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다. ‘아 저런 게 있구나’, ‘우리와는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느낌에서 그쳐도 좋다.

전 수석연구원은 “박물관에 편하게 놀러 갈 수 있게 될 때 죽어 있던 공간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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