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천광암/김장

  • 입력 2003년 10월 27일 18시 13분


1960년대에 김치통조림이 등장했던 적이 있다. 베트남에 파병된 우리 국군에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는 저온 저장기술이 없다 보니 김치를 가열처리해 밀폐 용기에 담았다. 김치는 섭씨 5도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숙성시켜야 제 맛이 난다. 가열처리한 통조림 김치는 맛도 영양도 김치라고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국땅에서 고향을 그리던 우리 군인들에게는 김치통조림이 향수를 적지 않게 달래 줬다고 한다. 한국인의 김치 사랑은 그처럼 유별나다.

▷20∼30년 전만 해도 김치는 ‘겨울의 반(半)양식’이라고 해서 김장을 하지 않는 집이 드물었다. 추운 겨울날씨 때문에 김장 김치를 제외하고는 채소를 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김치를 담그고 땅을 파서 김장독을 묻기는 이만저만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이런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한때는 ‘김장 근대화’라는 구호가 등장했을 정도다. 편리함만 따진다면 김장은 이미 없어졌어야 할 풍습이다. 온실재배기술이 발달해 사시사철 배추를 키울 수 있고, 김치가 아니라도 채소는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다. 값싼 일회용 김치도 편의점에 늘 진열돼 있다.

▷그런데도 김장이 여전히 맥을 이어가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로 생각된다. 첫째, 김장 김치의 맛은 지역마다 집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독특한 맛은 어느 가게에서도 살 수 없다. 둘째, 김치냉장고의 개발이다. 김치냉장고는 보관에 대한 고민을 상당 부분 덜어 줬다. ‘김치냉장고에서 숙성시킨 김치는 독특한 맛이 있다’는 마니아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셋째, 김장이 우리의 풍속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가족이 겨우내 먹을 반찬거리를 장만하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연례행사인 것이다. 물론 정성이 담긴 김장 김치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할인점 롯데마트가 주부 3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가운데 3명이 올해 김장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김장을 하지 않는 이유로 40대에서는 ‘김장에 지쳐서’, 20대에서는 ‘방법을 몰라서’라는 응답이 많았다. 단지 그런 이유라면 접점이 있을 법하다. 40, 50대 어머니는 가르치고, 20대 아들 딸 사위 며느리가 담그면 된다. 꼭 김장이 목적이 아니다. 한국의 이혼율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특히 젊은 세대는 혼인신고도 하기 전에 이혼하는 일이 잦다. 김치뿐 아니라 가족도 ‘1회용’이 되어 가는 징후가 보인다. 김치의 묵은 맛을 내는 비법을 전하는 가운데 원숙한 가족관계를 만들어 가는 방법 또한 가르치고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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