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국방장관의 우산

  • 입력 2003년 10월 2일 18시 27분


“우리 군인들, 보기 좋구먼.” 군인들의 시가행진이 있었던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 시민이 옆사람에게 말했다. “맞아. 참 믿음직해 보이네.” 옆사람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 이날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리 군은 오랜만에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다. 시민 중에 교통통제를 불평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국산기술로 개발된 미사일 등 첨단무기가 지나갈 때에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동안 머리띠와 깃발로 무장한 시위대의 무질서한 행동에 식상한 때문일까. 시민들은 우리 병사들의 씩씩한 구호와 질서정연한 행진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들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이었다.

▷시가행진에 앞서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기념행사에는 군 원로들도 대거 참여했다. 70, 80대 고령의 창군원로 참전원로와 상이군경이 현역병과 함께 행진에 참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기획된 이벤트였다. 하지만 행사가 끝난 뒤 군 원로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열병식 내내 조영길 국방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우산을 받쳐 준 모습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행사 후 국방장관과 악수를 나눌 때 “팔이 많이 아팠겠습니다”라며 ‘안쓰러운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국방장관이 우산을 받쳐 준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은 다름 아닌 국군의 55번째 생일이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현역병뿐 아니라 군 원로들도 비를 맞아 가며 행사에 참여했다. 이런 날 군의 실질적인 총수인 국방장관이 우산을 들어야 했던 건 아무래도 보기에 민망했다. ‘젊은’ 대통령이 우산을 사양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그래서 병사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열병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이날 행사는 한층 빛이 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대통령의 군에 대한 사랑이 보다 돋보이지 않았을까.

▷청와대측은 어제 출입기자들에게 “대통령이 비를 맞고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당시 정황에서 대통령이 국방부측이 사전에 준비했다는 우의와 모자를 착용하는 게 여의치 않았다면, 경호원이 우산을 들도록 조치할 수는 없었을까. 그런 점에서 이번 ‘우산 해프닝’은 의전상의 경직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며, 이 정부가 강조해 온 시스템 작동이 매끄럽지 않았던 또 하나의 예다. 그나저나 앞으로 혹시라도 외국 국방장관이 ‘우산을 받쳐 든’ 우리 국방장관을 가볍게 대하는 일은 없을까 걱정스럽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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