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끄러운 미국 원정 출산

  • 입력 2003년 9월 21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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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정출산이 마침내 미국 이민세관국과 국세청의 조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한국 정부가 방치하는 사이 미국에서 한국인의 원정출산이 적정 수위를 넘었다고 판단하고 손을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만삭의 임신부들이 신생아에게 미국 국적을 따 주기 위해 줄줄이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풍경이 세계 다른 나라에 또 있을지 모르겠다.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자녀의 미국 국적 취득과 이를 이용한 병역 면제는 우리 사회의 일부 계층이 누려온 비뚤어진 특권이다. 그러나 지금은 평범한 중산층까지 원정출산 대열에 참여해 자식을 이중국적자로 만들고 있다니 심각한 문제다.

원정출산 패키지 상품을 파는 여행업체가 생겨났고 미국에는 한국인 산모를 전문으로 입원시키는 병원들도 있다고 한다. 이 나라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다가 18세 때 미국 국적을 선택해 병역 의무를 저버리는 ‘국적 놀음’이 더 확산되다 보면 사회공동체의 균열을 가져올 위험성마저 없지 않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 국적을 아예 포기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는 이민은 오히려 건전한 측면이 있다.

사회 일각에는 국제화 시대의 논리를 원용해 원정출산을 관대하게 바라보는 관점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해외에 뿌리를 내린 교민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자는 논의는 한국 국민에게 부과된 각종 의무를 기피하려는 원정출산과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

현 정부가 출범할 때도 장차관급 인사의 인선과정에서 원정출산을 통한 자녀와 손자의 이중국적 보유 사례가 상당수 드러났다. 일부 인사는 인선에서 탈락했지만 몇몇 인사는 그대로 검증을 통과했다. 원정출산을 막으려면 이런 이중 잣대를 없애 사회지도층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칙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

미국이 한국 임신부에 대한 비자발급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미국 정부와 협조해서라도 부끄러운 원정출산을 막는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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