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18…1944년 3월 3일(6)

  • 입력 2003년 9월 17일 1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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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정신대에 지원했다는 여자가 영차 하고 엉덩이를 들고 젖은 손을 몸뻬자락에 닦았다. 여자는 뜯은 미나리를 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는 닫힌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먼저 갈란다.”

“그래, 애썼다.”

“살펴가래이.”

솔솔 살랑살랑, 솔솔 살랑살랑, 3월의 훈풍에 가지가 쑥 자란 민들레 노란꽃이 고개를 까딱거리고, 솔솔 살랑살랑, 솔솔 살랑살랑, 단추가 두 개나 떨어져 나간 블라우스 틈새로 파고들어 미끈하고 탱탱한 젖가슴이 드러났다. 솔솔 살랑살랑, 솔솔 살랑살랑, 여자는 턱에 주름을 잡고 떨어진 도토리 같은 젖꼭지를 내려다보다가, 바람이 세니까 어차피 여며봐야 또 헤벌어질 것 같아 시치미 뗀 얼굴로 일부러 소리높이 노래를 부르며 강둑을 올라갔다.

나부끼는 검은 머리 꽉 묶고

오늘도 씩씩하게 아침 이슬 밟고

가면 맞아주는 친구의 노래

아아 애국의 피가 타오른다

우리는 소녀 정신대

“홍우네도 여자아가 태어났다고 카던데.”

“그래, 오늘이 삼칠일일 끼다.”

“그 집도 재난이 말이 아니제. 딸이 집을 나가서, 벌써 반년 아이가?”

“어미가 반미치광이가 돼서 찾아다녔다 아이가, 여기저기 묻고 다니면서.”

“열세 살 시집도 안 간 딸자슥인데 안 그렇겠나. 소식도 없다고 하니까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제. 살아 있으면 엽서라도 보낼 낀데.”

“그 아버지는 혹이 떨어져나갔다고 좋아라 한다 아이가.”

“제 피가 아니니까네. 마, 집 나간 것도 아버지하고 사이가 안 좋아서 그란 거 아니겠나.”

“우리 아들하고 선보자는 얘기가 있었다.”

“뭐라? 서른 살도 넘은 아들아이가?”

“며느리가 셋째 배고 결핵으로 죽는 바람에, 두 자슥 기르느라 고생이 말이 아이다.”

“그런 데다 열세 살 난 딸자슥을 보내다니, 하루 빨리 떨어내고 싶었던 기제.”

“그런 데라니, 무슨 말이고?”

“아이고, 됐다 됐어. 그 딸아이, 이름이 뭐라 캤더라, 영리하고 이뻐서, 얌전히 있었으면 올 아랑제 동기로 뽑혔을 낀데.”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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