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송아리 “내 나라서 데뷔전 가슴벅차”

  • 입력 2003년 9월 1일 17시 55분


“송 프로라고 불러주세요.” 송아리가 공식 프로 데뷔전인 한국여자오픈 출전을 앞두고 1일 서울 강남의 한 골프 연습장에서 몸을 풀고 있다. 권주훈기자
“송 프로라고 불러주세요.” 송아리가 공식 프로 데뷔전인 한국여자오픈 출전을 앞두고 1일 서울 강남의 한 골프 연습장에서 몸을 풀고 있다. 권주훈기자
“저는 자랑스러운 한국사람이에요. 한국말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약간 어색한 말투였지만 그는 우리말로 자신이 한국인임을 당당하게 밝혔다.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전날 오후 늦게 도착했기에 피곤하기도 했을 터. 그러나 그는 1일 오전 눈 뜨자마자 헬스클럽부터 찾아 땀을 흘렸다. “홈 팬 앞에서 멋진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랬다. 그에게 한국은 바로 홈이었다.

미국LPGA투어 최연소 프로에 도전하는 ‘골프 신동’ 송아리(17). 그는 1차 퀄리파잉(Q) 스쿨에서 1위를 차지하며 풀시드 획득을 향한 첫 관문을 가볍게 뚫은 뒤 지난달 31일 금의환향했다. 4일 부산 아시아드CC에서 개막되는 한국여자오픈에 특별초청선수로 출전하기 위해서다.

한국 국적을 선택한 뒤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는 그를 서울 강남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만났다.

우선 국적 문제가 궁금했다. 송아리는 86년 5월 1일 태국에서 송인종씨(54)와 태국인 어머니 바니 옹르키얏(46)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으로 건너가 언니와 함께 골프선수로 뛸 때에도 어머니의 성을 따 ‘아리 옹르키얏’이었던 그는 쌍둥이 언니 나리와 지난해 태국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택하기로 했다. 만 18세가 되는 내년 봄까지 모든 절차를 매듭지을 예정.

“아버지의 나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 한국의 명예를 살릴 수 있게 돼 기쁩니다. 국적 문제로 한동안 힘들었는데 이제 골프에만 전념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합니다.”

송아리의 결정에 태국에서 서운해하는 건 당연한 일. 그래서 송아리는 지난해 10월 태국 대표로 세계아마추어여자골프대회에 출전해 어머니의 나라에 우승컵을 선사했다. 홀가분하게 고별인사를 한 셈이다.

“한국말 잘하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또 한국 음식은 다 잘 먹습니다. 불고기 알탕을 좋아하고요. 오늘 운동 끝나면 냉면 먹으러 갈 거예요.”

2년 넘도록 부동의 미국 아마추어 골프 랭킹 1위로 군림해온 송아리는 지난달 미국LPGA투어 사상 처음 커미셔너 직권으로 18세 이상만 가능한 프로 전향 허가를 따냈다. 최고의 프로가 되는 게 꿈이기에 대학 생활에 대한 미련도 접었다. 골프보다 공부를 하고 싶다며 지난달 플로리다대학에 입학한 언니 나리와는 대조적이다.

함께 골프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쌍둥이 언니 나리(왼쪽), 아버지 송인종씨(가운데)와 나란히 선 송아리. 권주훈기자

다음달 Q스쿨 최종전에 합격한 뒤 내년 시즌 투어에 뛰어들어 신인왕을 차지하고 장차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다는 것이 그의 포부.

한국여자오픈은 송아리의 프로데뷔전. 그는 “우승하고 싶다. 요즘 플레이가 잘되고 있으므로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처음 받을 상금으로는 언니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주겠다고.

송아리는 올 추석을 한국의 고모집에서 보낸다. 5세 때 아버지를 따라와 사촌들과 함께 차례를 지낸 지 12년 만이다. 한국 국적을 택한 뒤 맞는 첫 추석이기에 더욱 뜻깊다.

“어렵게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기회가 되면 외로운 노인들을 돕기 위한 자선 골프 클리닉을 열고 싶어요.”

송아리는 골프 실력 못지않게 따뜻한 마음까지 지녔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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